'44회 불법도촬이 무죄?' 수사기관 ‘임의제출’ 허점에 웃는 범죄자들

따옴표<p class="">"경찰의 증거수집 절차가 위법해 무죄를 선고합니다. 피고인이 잘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판사)

지난해 11월12일 서울중앙지법 4층의 한 항소심 법정. 판사의 이 같은 질책 속에 피고인 A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2018년 4월부터 1년 이상 서울 지역 지하철에서 여성 이용객들을 44회 불법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A씨는 자신의 혐의를 자백·인정한 상태였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위법 증거수집'이 문제였다. 경찰은 당초 아내를 성폭행하고 불법촬영한 혐의로 A씨에게서 2019년 11월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아 수사했다. 이 과정에서 '지하철 불법촬영' 혐의가 새로 발견됐지만, 별도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지 않았다.

검찰 역시 추가로 증거를 수집하는 동안 A씨 측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에 임의제출의 효력이 별건 혐의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며 공소를 유지했다.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의 자백과 피해자들의 사진이 명확히 존재했지만, 형사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범행을 저지르고도 수사기관이 임의제출 과정에 저지른 잘못 덕분에 처벌을 면하는 사례들이 확인되고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218조에 근거한 '임의제출에 의한 압수'는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의한 압수'와 달리 압수의 범위가 불명확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대법원 판례가 수사기관이 전자정보를 압수수색할 경우 원칙적으로 영장 발부의 사유로 된 범죄 혐의사실과 관련된 부분만을 문서 출력하거나 해당 파일을 복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판시한 이유다. 지난해 11월 불법 촬영으로 피해를 본 피해자가 가해자의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가 경찰에 제출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당사자 참여가 보장되지 않은 임의제출물 압수는 위법하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바 있다.

이러한 현실에도 수사기관은 관련 사례에 대한 현황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16일 "임의제출상 수사기관의 잘못으로 무죄 또는 공소기각이 선고된 사례들에 대한 별도 통계자료를 작성·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증거 임의제출 절차 문제로 무죄가 나온 판결의 데이터는 관리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상급심에서의 공소유지를 위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씨의 재판에서 재판부의 질책에도 검찰은 상고하지 않았고, 무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검찰 관계자는 "무죄나 공소기각 판결이 확정된 경우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동일사건에 대해 다시 기소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결국 수사기관 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영장 신청 범위 내에서 수사를 진행해야 할 경찰이 이를 숨기고 영장 밖 수사를 한 다음 (검찰에) 보고한다면 당연히 책임이 있다"며 "법정에서 다투는 검찰 역시 위법한 증거 수집을 하지 않도록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피의자 전자정보에서 별건 혐의에 대한 탐색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수사 인권규칙'을 지난달 입법예고했다. 검찰은 "관련 대법원 판례에 따라 적법절차를 준수하며 수사를 해 오고 있다"며 별도의 규칙은 제정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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