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공공정책에서 테크노크라시가 사라졌다

김홍범 경상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공공정책의 실질은 정치가 아닌 과학(전문성)에 있고, 과학의 핵심은 사실과 이성적 논리다. 그런데 미국 연준 부의장을 지낸 블라인더(A. Blinder) 프린스턴대 교수에 따르면, "정부에게서 정치색을 없애기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책의 정당성은 전문성 아닌 "대중적 지지"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국은 다양한 정책을 놓고 "정치적 결정과 전문적 결정을 구분하는 선"을 긋는다. 20세기 말, 그는 선거로 인한 정책의 단기화·정치화를 지적하며 선의 이동을 제안했다. 더 많은 공공정책들(예컨대 재정정책)이 통화정책처럼 테크노크라시 영역 즉 '전문성 중심 정책시스템'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은 달랐다. 2008년 글로벌 위기 탓이다. 회복이 워낙 더뎠기에 각국 정부의 정책시계(policy horizon)는 더욱 단기화된 채 장기간 유지됐고, 공공정책에서 정치색은 그만큼 더 짙어졌다. 작년 초부턴 코로나19 위기가 큰 몫을 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선 문정부의 간판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은 이론도 실증도 취약한 허구라는 비판에서 처음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실제로 소주성은 성장은커녕 매년 최저임금의 인위적 급상승을 통해 엄청난 시장왜곡을 빚었다. 언젠가부터 "경제정책방향" 보도자료에선 '소득주도성장' 용어가 슬쩍 자취를 감췄으나, 이 실패한 정책을 정부는 여전히 붙들고 있다. 한편 부동산정책은 시장원리를 아예 무시했다. 온 국민을 잠재적 투기자로 보고, 투기 근절에만 초점을 맞춰 반시장적 규제를 양산했다. 규제가 나올 때마다 집값은 보란 듯이 급등했다. 집값 예상을 한껏 부풀려 수요 급증과 공급 급감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특히 임대차 3법으로 집값과 전월세가 동반 폭등 중이나, 정책기조는 바뀐 게 없다.

나라곳간을 살펴보자. 문정부 5년간 국가채무 순증 전망치는 약 410조로, 외환위기와 글로벌위기를 각각 수습한 김대중정부와 이명박정부의 총 10년간 순증액 약 266조의 1.5배가 넘는다. 낭비성 복지지출을 늘린 결과다. 내년에도 초팽창기조가 계속된다니, 재정건전성은 고사하고 미래 세대의 세금 빚만 켜켜이 쌓여간다. 금융감독도 문제다. 금융을 화수분 취급하는 정치권의 상생법안에 정부가 춤춘다. 서민금융이 ‘소비자보호’로, 차주 신용도에 따른 금리 차등화(금융원리)의 부정(否定)이 '따뜻한 금융'으로 둔갑한 지 오래다.

요컨대 문정부의 주요 경제금융정책에서 테크노크라시가 송두리째 사라졌다. 실은 경제금융 분야만이 아니다. 탈원전과 방역은 물론, 교육, 국방, 외교 등 다른 각 분야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비사실·비논리·비상식이 공공정책 전반을 압도한다. 서민 대 엘리트의 대립 구도를 내세워 전문성을 공공연히 부정하는 포퓰리즘 정치가 정책을 온통 뒤덮은 탓이다. 과연 우리 사회의 앞날은 무엇일까.

'국부론'으로 유명한 아담 스미스는 일찍이 "나라엔 파멸을 부르는 우환이 무척 많다"고 했다. '정책이 암만 잘못돼도 나라가 쉬 망하진 않는다'는 의미라니, 위로받아야 하나. 아르헨티나를 보라. 20세기 초 유럽 청년들에겐 "미래의 나라"였으나, 백년 포퓰리즘에 망가진 지금은 "과거에 갇힌" 실패국이다. 반면교사가 아니고 무엇이랴.

김홍범 경상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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