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의 그늘, 롯데에 무슨 일이…

롯데, 작년부터 희망퇴직 실시
신청자 적자 직책 없애는 강수
급여 삭감 효과, 주주에게 배당

[아시아경제 임혜선 기자]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롯데푸드에 근무 중인 이진수(46·가명)씨는 요즘 들어 부쩍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되뇐다. 지난해부터 계열사별로 차례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이미 퇴직한 입사 동기도 적지 않다. 최근 회사는 희망퇴직 공고를 냈다. 지난 8일 자 인사에서 이씨는 팀장에서 강등됐다. 아이 교육비를 비롯해 아직 돈 들어갈 곳이 많은데, 회사의 무언의 압박을 견디기는 어려웠다. ‘기본급×24개월’의 희망퇴직 조건은 다른 대기업과 비교해 좋지 않았지만 ‘버티면 지옥, 나가면 저승’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희망퇴직 신청서를 냈다.

이씨는 "급여 수준은 낮지만 ‘직원을 자르지 않는다’라는 오너의 경영 철학에 안정적인 회사라는 자부심을 느끼며 일해왔다"면서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채용시장도 얼어붙은 상황이라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18일 ‘재계 서열 5위’ 롯데에 감원 삭풍이 거세다. 롯데 계열사 가운데 롯데푸드, 롯데GRS, 롯데아사히주류, 롯데 하이마트, 호텔롯데 등이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희망퇴직 조건이 좋지 않다 보니 신청자는 많지 않다. 일부 계열사는 보직을 맡고 있는 직원들의 직책을 없애는 초강수를 뒀다. 직책 수당이 사라지면서 급여도 줄어들었다. 결국 직책이 없어진 직원 상당수가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있다. 직원들은 "회사가 급여를 낮춰 희망퇴직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롯데 계열사의 한 직원은 "과거 롯데가 호봉제를 폐지할 때 직책에 대한 수당을 주면서 동종 업계와 급여 수준을 맞췄다"면서 "롯데는 대리, 책임, 수석으로 진급해도 급여 인상 폭이 미미한 편인데, 회사가 직책 자릿수를 많이 줄이면서 실상 급여를 낮춘 상황"이라고 했다.

롯데칠성음료의 경우, 음료사업부문과 주류사업부문을 통합하면서 복지 및 연봉체계 기준을 상대적으로 낮은 주류부문에 맞췄다. 기본급을 삭감하고 일부 수당으로 전환시키면서 연봉을 맞춰 실 수령액 자체가 줄었다.

주요 계열사 임직원들의 사기저하와 상실감도 커지고 있다. 롯데지주와 롯데제과 등이 희망퇴직 속에서 주주 배당을 늘리겠다고 밝히며 "직원들의 눈물값을 주주들에게 주겠다는 것"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도 나온다.

롯데 계열사의 한 직원은 "회사는 코로나19로 고용 유지를 강조하는 정부 눈치를 보면서 뒤에서 권고사직을 유도하고 있다"며 "위기일수록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불안감만 조성해 많은 롯데 직원들은 무기력에 빠져있다"고 했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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