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혜원기자
[아시아경제 문혜원 기자] #'딩동'. 인천 송도 유진로봇 본사 1층 카페 계산대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이 들어왔다. 부지런히 음료를 만드는 사장님의 뒤로 미끄러지듯 다가와 대기하던 자율주행로봇 '고카트'는 컵꽂이에 커피를 받아들고 이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행선지는 본사 4층 회의실. 아직 시범운영 단계라 속도가 느리지만 오가는 직원들과 부딪히는 사고 한번 없이 묵묵히 자기 갈 길을 간다. 배달 미션을 완료하고 다시 1층 카페 고카트 주차장에 스스로 들어가 대기한다. 배달에 걸린 시간은 약 5분. 회의실에서 바이어 미팅을 진행하던 직원들은 커피를 사기 위해 카페를 찾을 필요없이 회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 배달 로봇에는 유진로봇이 최근 자체 개발에 성공한 3차원 센서인 '3D 라이다(LiDAR) 센서'가 부착돼있다. 라이다는 로봇의 위치인식이나 장애물 감지, 사물 식별 등에 활용돼 일종의 '눈' 역할을 한다.
유진로봇의 '초소형 3차원 스캐닝 라이다 센서'는 270도 수평 스캔과 90도 수직 스캔을 동시에 진행해 한 공간의 3D 지도를 사각지대 없이 구현해 낼 수 있다. 라이다 센서는 실행되는 순간부터 감지된 공간 안의 모든 사물체를 마치 3D 프린터처럼 그려낸다. 본지 기자가 지난 14일 시연을 지켜볼 당시 본사 1층 체험실 한쪽 벽면에 전시된 유진로봇의 역대 로봇청소기 제품들부터 창문 틀의 모양, 서 있는 사람들의 몸동작까지 자세하게 그려냈다. 1~2초에 한번씩 그려지는 무지개 빛 광선들은 시간이 갈수록 많은 갯수가 겹치면서 사물체의 실루엣을 더욱 정확하게 표현해냈다.
유진로봇은 이 제품에 대한 특허권을 최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유진로봇의 특허는 광(光)송신기 모듈과 수신기 모듈 사이 특정 공간에 고(高)반사율 거울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스캔의 영역을 넓혔다. 거울에서 반사된 광은 이동 거울의 제 2반사 영역에 반사되는 데 광의 이동 경로를 분리하는 차단벽을 설치해 산란광을 제거하는 효과를 노렸다.
기존 일본의 특허제품은 호쿠요사에서 개발한 것으로 지난해 기준 약 800만원의 고가 제품이다. 자율주행 로봇 시장에서 상용화하기에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유진로봇의 3D 라이다는 광 반사에 사용되는 다중 거울을 최소화해서 비용을 일본 제품의 5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이형주 유진로봇 국내영업본부 부장은 "일본 3D 라이다 제품은 워낙 고가이다보니 로봇 시장에서 수요가 많지 않았던 반면 우리 제품은 150만~160만원으로 단가를 낮출 수 있어 일본 제품의 한계점을 극복했다"고 설명했다.
1988년 설립된 유진로봇(옛 지나월드)은 사업 초기 생산 공장에서 제품을 조립ㆍ용접하는데 쓰는 산업용 로봇을 생산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산업용 로봇 수요가 줄면서 2000년 개인 서비스 로봇 분야로 사업방향을 바꿨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동요를 들려주는 교육 로봇 '아이로비'를 2004년 출시해 5년간 3000대를 팔았다. 이듬해 청소 로봇 '아이클레보'를 시장에 내놨다. 출시 초기 연 2만대였던 아이클레보의 판매량은 2012년 5만대, 2015년 이후 10만대로 훌쩍 늘었고 청소로봇의 '원조'가 됐다.
유진로봇은 최근 로봇 솔루션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 김영재 유진로봇 영업본부장(전무)은 "각 산업군별로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 로봇이나 자율ㆍ자동화, 비대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였는데 코로나19 사태로 더 증폭했다"며 "우리의 기본 사업이 로봇인만큼 사업 영역을 넓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문혜원 기자 hmoon3@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