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담기자
서울 종로구 계동길에 위치한 '물나무 사진관' 외부 전경. 창문에 '자화상'을 소개하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앨범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과거로 여행을 시작한다. 첫 걸음마를 떼던 순간부터 주름이 자글자글해지기까지, 앨범 속에는 누군가의 일생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 전환된 이후 집집마다 꽂혀있던 묵직한 앨범은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스마트폰이 몰고 온 혁신은 동네 사진관마저 사라지게 하는 중이다. 필름 인화를 맡기러 오던 이들의 발걸음이 끊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옛 감성'을 내세워 부활을 시도하는 사진관이 있어 주목을 받는다. 인스타그래머들 사이에서 인기도 높다. 아날로그 감성을 내세우며 땀과 노력이 깃든 한 장의 사진으로 고객을 매료시키는 곳, 자연스러움을 모토로 영원히 간직하고픈 사진을 만드는 곳, '물나무 사진관'이 그곳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계동길'이라 불리는 거리를 5분 정도 걷다보면 곳곳에 자리잡은 한옥들 사이로 무채색의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건물 외관과 외벽을 덮은 담쟁이덩굴은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듯 하다. 빈티지한 외관과 꼭 닮은 사진관 내부는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있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옛날 카메라부터 곳곳에 걸린 흑백 사진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2층으로 올라가면 잔잔한 노랫소리를 배경으로 스튜디오 공간이 펼쳐져 있다. 손때 묻은 카메라 2대와 조명, 커다란 거울 등이 공간을 채운다. 정갈한 매력이 돋보이는 이곳은 가수 아이유가 '금요일에 만나요'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서울 종로구 계동길에 위치한 '물나무 사진관' 외부 전경. 유리문에는 '정통흑백사진관'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이곳은 '옛것'의 철학을 담은 공간이다. 흑백사진부터 한지, 족자 등 요즘 쉽사리 찾아보기 힘든 물건들이 사진관을 가득 채운 이유는 '옛것'의 미덕을 중시하는 이 사진관만의 가치관 때문일 터. 사진관 주인장인 김현식(51) 대표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신사조(傳神寫照)'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의 형상 재현에 그치지 않고 정신까지 담아내겠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사진(寫眞)이라는 단어는 '있는 그대로를 재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에서는 '털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그 사람이 아니다'고 했다"며 "'사진'의 사전적 문맥을 가져가기 위해 아날로그 작업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지에 사진을 인화하는 점도 독특하다.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사진을 만들고자 했던 김 대표는 해답을 전통 한지에서 찾았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한지는 뛰어난 보존성 때문에 '천년 한지'라고 불린다"며 "한지에 옻칠을 하는 등 여러 작업을 거치면 사진을 반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 수십 대가 지나도 여전히 똑같은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거친 질감을 가진 한지를 프린트에 적용하기 위해 약 7년간의 세월을 투자했다고 귀띔했다.
사진관은 '자화상 프로젝트'로 입소문이 났다. 사진관에서 사진사 없이 혼자 찍어보는 경험을 선사해보자는 다소 엉뚱한 발상으로 2015년부터 고객이 자신의 모습을 직접 흑백사진으로 찍도록 해봤는데, 의외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고객으로서는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사진의 완성도를 따질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어떤 포즈를 취해도 상관없다 보니, 다소 투박하고 서투르게 표현되더라도 온전한 '나 자신'을 사진에 남길 수 있는 색다른 경험에 주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오롯이 본인에 대한 시간을 갖게 된 손님들 중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샘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한다. 자화상 사진 촬영 방식은 간단하다. 2층 스튜디오로 올라가 카메라와 연결된 고무공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김 대표는 촬영에 서투른 고객에게 충분한 여유를 주면서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도록 배려해 준다.
'물나무 사진관' 2층에 자리한 촬영 스튜디오. 이곳에서 '자화상 프로젝트' 등이 진행된다.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김 대표의 작품은 인근 골목 곳곳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오래된 음식점이든, 편의점이든 그의 커다란 흑백사진 작품을 내걸어놓고 있어서다. 2년 전 '정박의 기억 : 계동 2018' 전시를 진행하면서 계동길 상점 주인들을 찍어 그들의 이야기를 도록에 담았는데, 마음에 들어힌 점주들이 하나둘씩 그 사진을 가게 앞에 내걸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골목은 하나의 갤러리가 됐다. 그는 과거를 보존해야겠다는 취지에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골목의 풍경이 너무나도 빨리 변하고 있다. 아쉬운 마음에 이제라도 이 마을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를 기록해 방문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전시 프로젝트는 주민들끼리 서로 관심을 갖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낯은 익지만 쉽게 말을 섞지 못하던 주민들이 흑백 사진을 보며 어울리게 됐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올해로 물나무 사진관이 10년을 맞았다며 문을 연 첫 해와 같은 마음으로 사진을 통한 연대감 확대를 지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진의 역할이나 가치를 공유하도록 지금은 이곳과 멀리 떨어진 전북 군산으로 무대를 사진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런 일들이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