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표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2018년 4월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 2층 회담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장에서 착석하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남 강경드라이브에 오빠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동을 거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북한판 '굿캅-배드캅(good cop-bad cop)' 전략이 다시 관심을 끈다.
좋은 경찰과 나쁜 경찰의 역할을 분담시키는 이 협상전략은 미국이 북한을 상대하면서 써 왔던 방법이기도 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등이 강경·압박성 발언으로 배드캅을 맡았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화적 발언으로 굿캅을 자임했던 식이다.
북한판 굿캅-배드캅 전략은 24일 김 위원장의 전격적인 대남군사행동 보류 지시로 구체화됐다. 이날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23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7기 5차 회의 예비회의를 주재하고 대남 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시켰다고 보도했다.
최근 김 제1부부장이 주도해오던 대남 비난공세를 일시정지 시킨 셈이다. 북한은 지난 9일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한다면서 대남 군사행동을 예고해왔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13일 담화에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를 암시한 후 "다음번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했다.
이어 17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대변인 담화에서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에 군 부대 전개 ▲비무장지대(DMZ)에서 철수했던 감시초소(GP) 군대 배치 ▲서해상 군사훈련 재개 ▲대남 삐라(전단) 살포 군사적 지원을 발표했다.
김 제1부부장은 17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맹물먹고 속이 얹힌 소리같은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만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았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김 제1부부장의 발언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신속하게 현실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가 13일 담화에서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지 불과 사흘만에 이는 실행에 옮겨졌다.
또한 당 통일전선부와 군 총참모부 등 관련 부서 기관들이 나서 김 제1부부장의 담화 이행 지시를 언급하고 심지어 노동신문 등에 북한 간부의 주민들의 김여정 담화 실행 결의가 실리는 등 북한 사회에 김 제1부부장의 지위가 확실히 각인되는 계기도 됐다.
김 제1부부장이 직접 나서 연속적인 보복을 호언장담한 만큼 이후 후속 조치도 이른 시일 내에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김 위원장의 24일 '보류' 지시가 전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 위원장과 김 제1부부장의 이러한 역할 분담은 올해 들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 제1부부장이 지난 3월 3일 북한의 발사체 발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유감 표명에 첫 담화를 냈으나, 이튿날인 3월 4일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낸 바 있다.
북한은 굿캅-배드캅 전략을 통해 김 위원장을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는 전략적 성과와 김 제1부부장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간접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굿캅-배드캅 전략이라기보다는, 북한의 현실적 필요에 의한 국면 전환 시도라는 평가도 나온다.
북한에 대응해 한미는 연합훈련 재개를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미 항공모함 2척이 한반도를 작전 구역으로 포함하는 7함대 작전 구역에 전진 배치되는 등 대북 압박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의 초강경 정책으로 한미연합군사훈련이 확대되고 미국의 전략자산이 수시로 한반도에 전개된다면 북한도 몹시 피로하게 된다"며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한 부담감, 군대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이 북한의 후퇴 배경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