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담기자
모나미 매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누구나 한 번쯤은 사용했을 법한 필기구가 있다. 바로 볼펜 '모나미'다. 프랑스어로 '나의(Mon) 친구(Ami)'를 뜻하는 모나미는 반세기가 넘는 60년 동안 국내 필기구의 역사를 이끌어 온 국내 대표 브랜드다.
특히 하얀 육각형 몸통의 단순한 디자인을 가진 '모나미 153'은 1963년 출시 이후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외관이 변하지 않고 저렴한 가격을 유지해 일명 '국민 볼펜'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 같은 평가에 걸맞게 153 볼펜의 생산량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153 볼펜의 하루 평균 생산량은 약 20만 자루다. 즉, 한 자루당 길이 14.5㎝인 153 볼펜의 1년 생산량을 일렬로 늘어놓으면 서울에서 미국 뉴욕(약 1만1000㎞)까지 갈 수 있는 길이가 된다.
최근에는 '애국 모나미'라는 별칭도 얻었다. 지난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인 '노 재팬'(No Japan) 바람이 불면서 '토종 업체'인 모나미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당시 모나미의 문구류 매출은 일주일 만에 553.7%를 뛰는 등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려 불매 운동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혔다.
1960년대 모나미 153볼펜 광고 이미지. 사진=해외문화홍보원
모나미의 시그니처 제품인 153 볼펜은 송삼석 초대 회장의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모나미는 1960년 설립 당시 회화구류를 생산하는 광신화학공업에서 시작했으나, 1962년 송 회장은 국내에서 열린 한 국제산업박람회에서 잉크를 찍어 쓰지 않고 사용하는 신기한 필기구를 보게 된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펜촉에 잉크를 찍어 쓰는 만년필 타입의 필기구를 주로 사용했기에 잉크 없이 바로 쓸 수 있는 펜은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송 회장은 국내 필기구의 단점을 보완할 만한 제품이라는 확신을 가졌고, 곧바로 제품 개발에 몰두한다. 그러나 시작은 만만치 않았다. 당장 기술력이 부족했다. 갖은 노력 끝에 일본 볼펜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던 오토볼펜 관계자로부터 유성(油性)잉크 제조기술만 이전 받았다.
이후 잉크 기술에 대한 여러 고민과 착오, 실패를 거친 끝에 1963년 5월 한국 최초로 잉크를 담은 펜 '모나미 153'을 출시했다. 당시 가격은 1960년대 신문 1부 값과 동일한 15원이었다.
모나미 153 볼펜의 1963년도 KS획득 광고. 사진=모나미
그러나 153 볼펜이 처음부터 잘 팔린 것은 아니었다. 만년필이나 펜촉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볼펜은 이질적으로 다가왔고, 당시 유성 잉크의 성분 배합 기술이 미숙해 플라스틱 관 밖으로 잉크가 새어 나와 옷에 배는 경우도 빈번했다. 옷을 버렸다는 소비자의 항의를 들을 때마다 모나미는 두말하지 않고 변상했다.
연구진들은 제품의 결점이 대두될 때마다 밤을 지새우며 기술을 보완하는 작업을 거듭했다. 그 노력의 결과, 153 볼펜을 기반으로 볼펜의 대중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후 모나미는 해당 제품 외에도 사인펜, 프러스펜, 네임펜, 보드 마카 등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 냈다.
현재 모나미는 해외 시장을 개척하며 '국민 볼펜'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다. 모나미는 1989년 태국 공장 설립을 기점으로 중국에 생산공장과 법인을 두고 있으며, 이를 거점으로 터키 등 100여 개국에 문구 및 사무용품을 수출하고 있다.
'모나미153' 볼펜. 사진=모나미
모나미의 대표 제품인 '모나미 153'은 송삼석 회장이 직접 이름을 붙인 것으로 세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는 숫자 '153'이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홉(9)'을 만드는 숫자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화투의 아홉끗(가보)은 행운을 부르는 숫자로 여겨져 왔다.
두 번째는 성경과 연관돼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송 회장은 요한복음 21장 11절인 '베드로가 예수님이 지시한 곳에서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구절에서 숫자 '153'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이 구절은 순리에 따르면 그만큼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의미로 풍요와 신뢰를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153'에는 당시 첫 판매 가격인 '15원'과 모나미의 '세 번째 제품'이라는 뜻도 담겨있다.
모나미 스페셜 에디션 '프러스펜 3000 데스크펜'. 사진=모나미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디지털 기기 활용 빈도가 높아지자 필기구 업계는 정체기를 맞았다. 모나미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 2011년 2197억 원 매출을 기록한 모나미는 지속해서 내리막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320억원으로 8년 새 반토막 났다.
모나미는 매출 하락 대안책으로 문구류 '프리미엄화'를 택했다. 그러나 회사 내부에서는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결국 모나미는 153 볼펜 출시 50주년을 맞은 2014년부터 고급화 전략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2014년 당시 모나미는 153 볼펜의 전통적인 디자인을 그대로 살리면서 고급 메탈 몸체와 금속 리필심을 적용한 '모나미 153 리미티드 1.0 블랙'을 한정판으로 내놓았다.
당시 판매가격은 2만 원이었다. 153 볼펜의 원가가 300원인 것에 비해 약 66배 비싼 가격이었으나, 제품은 출시 이틀 만에 품절됐다. 이를 계기로 모나미는 문구류 고급화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후 모나미는 프리미엄 전략을 본격화하며 153 아이디, 153 리스펙트, 153 네오, 153 블랙 앤 화이트, 153 골드, 153 블라썸, 153 네이처 등 고급 펜을 잇달아 선보였다.
특히 올 2월에는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스페셜 에디션 '프러스펜 3000 데스크펜'을 내놓았다. 해당 에디션은 모나미의 시그니처 제품 중 하나인 '프러스펜 3000'의 프리미엄 제품으로, 데스크펜 타입의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재해석됐다. 소비자 가격은 20만 원으로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의미가 의미인 만큼 소장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