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축지법, 사실은 불가능'…김일성·김정일 신비화 부정 주목

"사람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건 불가능"
3대 세습체제 정당화에 동원됐던 신격화 자제

북한이 최고지도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신비화하는데 이용했던 '축지법'의 주술적 성격을 부정하는 입장을 밝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축지법은 먼 거리를 순간이동하듯 빠르게 움직이는 가공의 기술이다. 북한은 김일성이 항일유격대 시절 축지법을 사용해 일제를 무찔렀다고 선전해왔다.

20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축지법의 비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사실 사람이 있다가 없어지고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나며 땅을 주름잡아다닐수는 없는 것"이라며 "우리가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발톱까지 무장한 강도 일제와 싸워이길 수 있던 것은 인민대중의 적극적인 지지와 방조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축지법이 마법사의 영적인 기술이 아니라, 인민과의 협업을 통해 이뤄진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신문은 "일제는 방대한 병력을 동원하여 항일유격대에 대한 토벌을 감행하였는데, 이르는 곳마다 밀정들을 박아넣고 유격대가 있는 곳을 탐지해가지고는 사면팔방으로 공격해왔다. 그렇지만 놈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인민들이 얼마나 되는 토벌대 병력이 언제 어디를 떠나 어느 골짜기로 들어간다는 것을 지체없이 우리 사령부에 알려주곤 하였다"고 했다.

이어 "그러면 우리는 지휘관회의를 열어 면밀한 작전계획을 세웠다. 우리는 유격대가 그 자리에 그냥 있는 것처럼 위장을 하고 실제 부대는 슬쩍 빠져서 매복하게 하였다. 이것을 알리 없는 일제놈들은 이번에는 틀림없다고 호언장담하면서 들어왔다가 유격대가 한명도 없는 것을 알고 아연실색하여 황황히 돌아서는데 이때 유격대가 불의에 불벼락을 안겨 몰살시키군 하였다. 이렇게 되자 일제놈들은 유격대가 축지법을 쓰고 신출귀몰한다고 비명을 올리군 하였다"고 했다.

신문은 그러면서 "만일 축지법이 있다면 그것은 인민대중의 축지법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축지법에 대한 이같은 현실적인 설명은 다소 이례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간 북한은 역사교과서 등에서 김씨일가 3대 세습체제를 극단적으로 미화하면서 우상숭배·지도자 신격화의 정점을 보여왔다.

북한의 교과서를 비롯한 주민 교육용 교재 등에는 김일성이 항일 무장 투쟁 시절 모래로 쌀을, 솔방울로 총알을 만들었으며 축지법을 쓰는가 하면 가랑잎을 타고 큰 강을 건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북한은 1996년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는 제목의 선전가요를 제작해 유포하기도 했다. '축지법 축지법 장군님 쓰신다 /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천하를 쥐락펴락 / 방선천리 주름잡아 장군님 가신다.' 김정일이 축지법을 쓰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가사다. 황당무계할 정도의 신격화는 오히려 김일성의 항일운동 경력까지 의심토록 하는 역효과를 냈다.

북한의 소학교 1학년 교과서에는 김정일이 세계지도에 조선과 일본이 모두 빨간색으로 표시된 것을 보고 먹으로 일본땅을 새까맣게 칠했더니 갑자기 일본 전역이 암흑천지가 되면서 폭우가 쏟아졌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처럼 북한은 교과서, 참고서, 지도서 등을 통해 3대 독재 세습체제를 미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는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기 들어 다소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3월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화면 진실을 가리우게(가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민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민의 영도자"라고 했다.

지도자란 신적 존재가 아니라, 인민의 삶과 밀착하고 인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적 지도자임을 부각하기 위한 시도로 평가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절(5·1절)이었던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준공식 현장에서 손뼉을 치고 있다.

최고지도자 우상화 중단에는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김 위원장의 반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금강산을 둘러보면서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하여 금강산이 10여 년간 방치되어 흠이 남았다"며 "땅이 아깝다.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말했다.

여기서 선임자는 아버지인 김정일을 가리키며, 이는 선대에 대한 작심비판으로 해석된다. 선대의 유훈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북한에선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됐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스마트폰 보급이 600만대를 넘어서는 등 주민 정보역량이 달라지며 당국의 선전방식이 변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의 진정성이나 선의로 인한 우상화 중단이 아니라, 이제는 얼토당토 안 한 이야기로는 더 이상 주민들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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