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가엘에게/김건영

반대라는 말이 좋아 나는 이렇게 쓰고 커피를 마셨다 그 반대는 뭐지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혹은 커피를 만들었다 나는 북반구에서 살고 있다 가엘은 남반구에서 죽어 간다고 생각한다 커피를 마실수록 어두워지는 얼굴이 좋다 살아간다와 죽어 간다는 어째서 같아지는가 내가 늙어 가는 동안 가엘은 어려진다 손을 뻗어 커피 열매를 딴다 반대라는 말은 정확하다 나는 가엘에게 편지를 써서 땅에 묻었다 안녕 나는 침대 밑의 남반구야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내가 잠든 동안 가엘은 반대편에서 노동을 시작한다 그곳에도 버즘나무가 있을 것이다 내가 일어나면 거꾸로 된 별자리를 세며 가엘은 나를 가엾게 여긴다 반대편으로 가기 위해 몇 그루의 가로수를 지나쳐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가엘은 한밤중을 열고 내 꿈으로 들어와 반대말 놀이를 한다 바다의 반대는 하늘이야 산이야 나의 반대는 너야 우리야 나는 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편지를 쓸 수 있다 적도의 반대는 어디일까 북극과 남극은 반대가 맞을까 매미 울음소리의 틈으로 제 목소리를 끼워 넣어 한여름의 페이지를 넘기는 귀뚜라미가 거기도 있을까 내가 당신에게서 돌아선 게 사랑의 반대였을까, 가엘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점심으로 맛있게 먹은 아보카도가 멕시코의 한 농장에서 왔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이 동료들과 나른한 대화를 나누면서 마신 커피가 라틴 아메리카나 북아프리카의 농장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어제 저녁 당신이 당신의 사랑스러운 아이의 입에 넣어 준 초콜릿이 서아프리카의 어느 농장에서 딴 카카오에서 추출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물론 당신이 방금 피운 담배가 인도네시아의 담배 농장에서 재배되었고, 당신이 담배를 사러 건넨 지폐가 우즈베키스탄의 목화 농장에서 딴 목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어쩌면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신이 꼭 알아야 할 진실이 하나 있다. 그 모든 지구 곳곳의 농장들에서 지금도 어린 가엘들이 죽어 가고 있다는 그 참혹한 사실 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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