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엽 감독 ''출국', 오길남·윤이상 진실공방 다루지 않았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영화를 영화로 봐줬으면 좋겠고, 영화 자체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 영화 '출국'을 연출한 노규엽 감독의 항변이다.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의 명예를 훼손하고, 박근혜 정부 시절 제작 지원에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부인했다.그는 5일 서울 잠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관에서 열린 출국 시사회에서 "체제에 치인 거대한 굴레 속에 함몰된 한 개인의 삶에 집중해 달라. 그게 저는 영화적이라고 생각하고 연출했다"고 했다. 출국은 당초 '사선에서'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공개하려다 1년 가까이 개봉 시점이 미뤄졌다.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논란에 휘말렸기 때문이다.이 영화는 재독 경제학자인 오길남 박사의 책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을 모티브로 한다. 오 박사는 1985년 독일에서 유학하던 중 북한 공작원에 포섭돼 가족과 함께 월북했다가 이듬해 아내와 두 딸을 북에 남겨놓고 탈출해 귀순했다. 그는 베를린에서 활동한 윤이상으로부터 월북을 권유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 인해서 우리 가족이 이렇게 해체됐다. 우리 가족은 아직도 요덕 수용소에 있다"고 했다. 윤이상은 생전에 재독 한인신문 등을 통해 "월북을 권유한 바 없고 오히려 탈북한 뒤 나를 찾아와 깜짝 놀랐다"며 오 박사의 의견을 부정했다. "그 이전에는 한인사회에서 멀찌감치 있어 본 게 전부"라고 했다.
출국에는 윤이상이 연상되는 배역이 등장한다. 주인공 오영민(이범수)에게 월북을 권하는 의사 강문환(전무송)이다. 하지만 노 감독은 "오영민이라는 대단한 지식인의 대척점에 있는 안타고니스트가 필요해 순수하게 창조해낸 인물"이라고 했다. "오 박사와 윤이상의 진실 공방은 두 사람만이 아는 거다.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윤이상을 다룰 수는 없었다"고 했다. 오영민 배역에 대해서도 "오 박사의 전기물을 만들고자 했다면 내용이 달라졌을 거다. 체제에 함몰된 개인의 삶에만 집중했다. 영화 속 배역들은 모두 제가 창조한 인물들일 뿐이다"라고 했다. 그는 "6년 전 한 경제학자의 비극적 탈출기를 접했다. 당시 1970년대 아날로그 정서에 빠져 있었는데, 차가운 첩보물에 가족을 찾기 위해 뜨겁게 움직이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오영민 배역에 오 박사가 영감을 준 사실까지 부정하지는 않겠다"고 했다.출국은 민간투자금 없이 국가지원금으로만 제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홍역을 앓았다. 제작사 디씨드는 "제작비 예산 65억원에 민간투자금 22억원이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모태펀드 계정에서 충당한 제작비에 대해서도 "모태펀드 계정이 국가자금을 토대로 운영되나 각 펀드마다 그 성격이 다르고 투자금에서 국가자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50%를 넘지 않는다. 나머지 출자금액은 민간 투자금으로 조합원을 모집해 운영된다. 투자금을 모두 공적 자금이라고 볼 수 없는 셈이다"라고 했다.
출국은 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첫 장편영화다. 이전까지 '우아한 세계(2007년)' 연출부, '미인도(2008년)' 조감독 등으로 활동했다. 그는 데뷔작이 개봉 전부터 논란에 휩싸인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어떤 날은 마음이 아팠고, 어떤 날은 기운이 너무 없었다.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이 부지기수였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이 영화에 참여한 스태프, 배우 수백 명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 노력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영화를 하루빨리 세상 밖으로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를 악물며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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