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서 있는 사람/문희정

대기표를 손에 쥐고 사람이 서 있다사람은 싸우는 사람을 본다내동댕이쳐지는 대기표를 본다한참이나 굴러 가는 종이 뭉치를 본다싸우는 사람은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기계는 새 순번을 흰 종이에 찍어 낸다새로운 집게손을 계속해서 불러들이며버려진 도처의 종이 뭉치들이 빠르게 수거된다붉은 숫자들이 높은 곳에서 천진하게 깜빡인다갓 잠에서 깨어난 아기처럼순번들은 말갛게 태어난다싸우는 사람은 질질 끌려 나가면서 싸우고싸우면서 조금씩 희미해진다대기표를 손에 쥐고 사람은 한자리에 계속해서 서 있다이유 없이 밤새 우는 아기를 안은창백하고 질긴 얼굴처럼
■이 시에는 어떤 상황이 제시되어 있다. 그 상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기표를 손에" 쥔 "사람이 서 있"는데, 그 사람은 "싸우는 사람을" 보고 있다. "싸우는 사람은 질질 끌려 나가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조금씩 희미해진다". "대기표를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은" "창백하고 질긴 얼굴"로 "한자리에 계속해서 서 있다". 어쩌면 제2금융권에 대출을 받으러 갔다가 마주한 장면일 수도 있겠다 싶다. 어쨌거나 살풍경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땅이 꺼져라 한숨이 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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