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환하다/이경철

가을 햇살 알갱이 반짝이는 피라미 떼.물속을 꼬누는 해오라기 눈 시린 부리.숨 멎고 흐름도 멈춘 여울목 한참.언뜻 바람에 흩어지는 갈대꽃 홀씨들.환하다.
아, 정말 "환하다." 그런데 무엇이 환한가? "가을 햇살 알갱이 반짝이는 피라미 떼"는 "환하다"에 좀 근사하지만 실은 가까울 뿐이다. "물속을 꼬누는 해오라기 눈 시린 부리"는 차라리 서늘하며, "숨 멎고 흐름도 멈춘 여울목 한참"은 더욱 그렇다. "언뜻 바람에 흩어지는 갈대꽃 홀씨들"은 청명한 가을을 배면에 두었을 때 비로소 환할 수 있다. 이처럼 야박하게 따지자면 이 시의 어느 스냅사진들도 환하지 않다. 그런데도 "환하다." 왜 그런가? 내가 생각하기에 "환하다"의 정체는 각 연이 연이어지면서 중첩되고 고조되는 긴장감과 그것이 어느 한순간 탁 풀릴 때의 아찔하고 아득한 감각이다. 이런 맥락에서 "환하다"는 시각적이라기보다는 (이런 말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근육적이다.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