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기자
지난해 11월5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故) 백남기 농민의 노제 /사진=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집회·시위 현장에 경찰 차벽과 살수차가 없어졌다. 현장을 경비하는 경력도 눈에 띄게 줄었다. 고(故) 백남기 농민의 죽음과 이후 이어진 시민사회의 노력이 경찰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25일은 백 농민의 사망 1주기다. 백 농민은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서울 종로1가에서 경찰 살수차가 내뿜은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서울대병원에서 317일간을 혼수상태로 지내다 지난해 9월 25일 숨을 거뒀다.경찰 발표에 따르면 사건 당시 살수차 수압은 2800rpm(14ba)였다. 한 방송사 제작진이 사고를 재연한 바에 따르면, 이는 1.5cm 나무판자가 쪼개지고 철판이 휘어질 정도의 위력이다. 사회 각계는 경찰 공권력이 무분별하게 행사되고 있다며 규탄했다.이후 백 농민 유족과 시민단체 등은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했다. 그러나 검찰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청장은 검찰 소환조사 없이 지난해 8월 퇴임했다. 사과 또한 없었다.고(故) 백남기 농민 1주기 추모대회 (사진=정준영 기자)
실제 23일 서울 중구 광화문광장에선 열린 백 농민의 추모대회에선 차벽과 살수차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추모대회는 주최 측 추산 3000명(경찰 추산 1500명)이 운집해 대규모로 진행됐다.경찰 또한 교통경찰 외에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집회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참가자와 경찰의 실랑이도 이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경찰은 당초 47개 중대 3800명 투입을 계획했다.이날 추모대회에 참석한 백 농민의 장녀 백도라지씨는 "경찰이 인권경찰로 거듭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단 사실을 언론으로 접하고 있다"며 "순수하게 잘못을 뉘우친 것인지, 원하는 것 얻기 위한 것인지 알기 어렵지만 옳은 방향이라면 지지한다"고 말했다.정준영 기자 labri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