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수집한 조선인 강제동원 증거 6000여건 공개

행정안전부, 관련 자료 13일 공개...일본 내 강제동원 연구자 하야시 에이다이 수집 생산, 일본 서남 한국기독교회관에 기증한 자료...군함도 등 강제 동원 조선인 피해 생생히 드러나

일제 조선인 강제동원 증거 자료. 메이지 광업소 메이지 탄광 노무월보 1944년 8월 호. 일본인 하야시 에이다이씨 수집. 사진제공=국가기록원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최근 영화 군함도 등으로 일제시대 조선인 강제 동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인이 직접 수집ㆍ기록한 군함도 등 관련 기록물 6000여건이 공개된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13일 일본 서남(西南)한국기독교회관으로부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 사본을 기증받아 공개했다. 일본 내 강제동원 연구자로 잘 알려진 하야시 에이다이(林えいだい)가 수집하거나 직접 생산한 기록물들이다. 하야시 에이다이는 조선인 강제동원 연구를 위해 후쿠오카, 홋카이도, 한국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관련 자료를 수집했고, 지금까지 '청산되지 않은 소화(昭和)-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1990) 등 57권을 저술한 연구가다. 이번에 공개된 기록물들에는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피해를 생생히 입증해주는 문서와 보여주고 있는 문서와 사진 기록 등 6000여점이 포함돼 있다.특히 1944년 8월부터 1945년 9월에 걸쳐 메이지(明治)광업소 메이지(明治)탄광(후쿠오카)이 생산한 '노무월보'는 당시 조선인이 처한 혹독한 노동 상황 등을 보여주는 중요 자료로 평가된다. 1944년 8월 누계 자료엔 탄광에 도착한 광부 1,963명 중 1,125명(약 57%)이 도주한 것으로 기록돼 있어 강제노동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제 조선인 강제동원 증거 자료. 메이지 광업소 메이지 탄광 노무월보 1944년 8월 호. 일본인 하야시 에이다이씨 수집. 사진제공=국가기록원

후쿠오카 소재 아소 요시쿠마(麻生吉?) 탄광 갱도사고(1936년) 관련 당시 신문 보도내용에 대한 자료도 있다. 지쿠호(筑豊) 일대에서 운영해온 7개 탄광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탄광에서 발생한 갱도 화재 사고로 인해 사망 20명, 중상 3명, 경상 12명, 행방불명 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내용이다.하야시 에이다이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군함도(하시마ㆍ端島) 관련 사진도 여러 점 포함됐다. 군함도는 미츠비시(三菱)가 1890년 사들여 개발한 해저 탄광으로 혹독한 노동조건 탓에 '감옥섬', '지옥섬'으로 불렸다. 공개된 사진은 군함도 전경(前景), 신사(神社) 및 초소(哨所), 세탄장(洗炭場), 조선인이 수용되었던 시설 등이다.하야시 에이다이가 강제동원 피해 유족 등을 직접만나 촬영한 사진과 면담 내용도 함께 공개되었다. 미츠비시 사키토(三菱 崎戶島)탄광(나가사키 소재) 피해자의 유족 사진에는 "부친이 면(面)순사에게 체포돼 연행된 후 1944년 병사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모친은 갑자기 가출하고 나는 친척집에 맡겨졌다. 부친의 유골은 전후(戰後) 동료가 가지고 돌아왔다."라고 기록돼 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기증받은 기록물을 정리해 연구자 및 국민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라며 "앞으로도 조선인 강제동원 등 과거사 관련 기록물을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여 학술연구, 열람 등에 적극 활용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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