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적 사실주의는 영화나 소설에 있을 뿐...상식의 시대로 돌아가야
박성호 경제부장
[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청와대의 새로운 주인이 결정났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보수와 진보 후보는 경제분야에서 날선 정책대결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가치경쟁'이라는 표현이 더 합당했다. 많은 공약이 엇비슷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그래서 누가 더 많은 세금을 푸느냐를 놓고 경쟁이 벌어졌다.하지만 문재인 19대 대통령은 이제 상식으로 돌아가야 한다.우선 화두였던 소득주도성장을 보자. 정부가 만약 40∼50대 가장의 통장에 100만원을 (어떤 명목으로든) 대가 없이 입금시켜줬다고 가정해 보자. 평범한 중산층 가장이라면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경기가 호황이어서 근로지속성이 담보되고 현재 보유한 대출이 감당 가능한 상황이라면 그는 100만원을 소비할 것이다. 가족을 위한 목적이든 본인의 취미생활을 위해서든 이 돈은 물건과 맞바꿔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2017년 이런 시나리오는 통하지 않는다. 경제활동인구 10명 중 7명이 빚이 있고 가구당 평균 부채가 5000만원을 넘는다. 자신이 급여를 얼마나 더 오래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평균은퇴연령으로 치는 55세(사실상 희망사항이지만) 이후 국민연금 수급개시 기간까지 손가락을 빨아야 하는 '소득 크레바스(income crevasse)'도 떡 하니 기다리고 있다. 100만원은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비상상황에 대비해 저축으로 고스란히 남게 될 수 밖에 없다.정부가 민간기업에 임금을 올리도록 압박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면서 각종 복지성 지출을 확대해 소비증대를 통한 경제 선순환을 꾀한다는 건 대통령 후보시절 추억으로 되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노인 절반이 빈곤상태에 있고,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개업(창업이 아니다) 사장으로 몰리는 비자발적 은퇴자 현실에 눈 감으면 안 된다.특히 소득주도 성장은 '선한 기업인 정신'이 전제돼야 한다. 급여를 올려주면서 고용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기 위해서는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과 재훈련 등에 적극 나서는 기업인들의 착한 마음이 필수다. 단언하지만 이런 기업인은 가뭄에 콩 나듯 할 뿐이다. 그렇다고 낙선한 후보들의 공약이 묘책도 아니었다.법인세를 낮추고 기업들의 이윤 창출력이 커지면 '낙수(trickle down)효과'로 중소기업과 근로자,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말은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 이 논리가 맞다면 수출이 6개월 연속 늘어나고 국내총생산(GDP)이 개선되고 있는데 지지부진한 고용과 바닥을 기다 못해 땅을 파고 들어갈 기세인 소비를 설명할 길이 없다.대선 기간 동안 우리는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에 빠졌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소설과 영화에서야 악당을 단숨에 물리치는 영웅이 등장하기도 하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경제가 호황기를 맞기도 한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로 돌아오자. 새로운 대통령은 국민에게 희망을 품자고 외치면서도 고통 없이 꿈을 이룰 수 없음을 설득해야 한다. 청와대의 새 주인은 "내가 할 수 있다"고 아집을 부려서도, 참모 조언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서도 안 된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처럼 "내가 바칠 것은 피와 땀과 눈물밖에 없다"고 국민에게 호소하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힘들지만 함께 가시밭길을 가자며 어깨를 내밀어야 한다.게임이론의 수학적 기초를 제공했던 존 폰 노이먼(John von Neumann) 교수는 2차 세계대전 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미국과 소련의 대치를 깰 유일한 해법은 어느 쪽이든 대규모 선제 핵공격으로 상대를 섬멸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 제안을 수용했으면 지금 세계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을 것이다.위대한 대통령이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시대가 아니다. 최고의 아이디어가 항상 성공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철저한 자기희생으로 국민을 위대하게 만드는 지도자가 성공하는 대통령이다. 박성호 기자 vicman1203@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경제부 박성호 기자 vicman1203@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