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라이트]정치는 카멜레온…맑은 정치인 뽑아야죠

영화 '특별시민' 최민식, 그가 본 권력의 민낯

배우 최민식

서울시장 3선 도전 정치인 변종구..."욕망 좇는 인간의 권력욕, 어느 정도 이해"최고의 무기는 '말' 연설문 직접 쓰고 열연...특정인 아닌 권모술수 정치 표현"정치판 아무리 더러워도 관심 끊지 말아야..."[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사랑하는 서울 시민 여러분, 저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고자 합니다. (중략)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다정다감한 얼굴과 차분한 말투로 이목을 사로잡더니 마지막 문장에서 오른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킨다. 필승의 결의이자 대중의 호응을 이끄는 보디랭귀지. 배우 최민식(55)이 생각하는 정치인은 논리 정연한 말솜씨의 소유자다. 어떤 좋은 이야기라도 호소력이 없으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단다. 그는 밤을 꼬박 새워 가며 어떻게 하면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영화 '특별시민'에서 서울시장 변종구를 연기했다.국회의원 3선을 거쳐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베테랑 정치인이다. 온갖 장애 요인을 요리조리 피하고, 속을 알 수 없는 거짓말로 동료 정치인·기자·시민을 구워삶는다. 궁극적 목표인 대권을 위해 비정한 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최민식을 지난 21일 삼청동 카페 웨스트19에서 만났다. 그는 "정치인의 강력한 무기인 말부터 제대로 구사해야 했다"고 했다. "말을 잘 한다고 정치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이의 말은 유려해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변종구가 베테랑 정치인이다 보니 그 점에 신경을 많이 썼다."

영화 '특별시민' 스틸 컷

최민식은 5분 이상의 긴 연설을 롱 테이크 쇼트(하나의 쇼트를 길게 촬영하는 것)로 연기했다. 몇 단락으로 나눠 표현하고 편집에서 쇼트를 붙일 수도 있었지만, 정치인의 면모를 보다 실감나게 전하고 싶었다. 연설문의 일부를 직접 작성하기도 했다. 소통 전문가인 서울여자대학교교목실 김창옥 겸임교수(44)를 만나 조언을 구하고, 대중을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단어들을 선별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얼마 전에 누리교육과정 점검 차 마포에 있는 한 어린이집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아이들에게 '너는 집이 어디니, 너는 어디 사니'라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대답하기를 '저는 저 편한 세상에 살아요'. '저는 레미아래에 살아요'. 저는 '푸르지용에 살아요.' 하아. 헐. 이제 우리 아이들의 가슴속에는 소박한 자기 동네 이름보다는 아파트 브랜드 이름이 자리 잡았구나. 이제 서울은 더 이상 추억이 없는 정서가 메말라버린 콘크리트 덩어리가 돼버렸구나. 저는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정서가 넘쳐나는 서울, 추억이 깃든 서울을 다시 되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영화 '특별시민' 스틸 컷

변종구는 시종일관 막힘없고 당당한 태도로 전세를 역전시킨다. 번득이는 눈과 단내 나는 호소로 말을 맛있게 주무르며 청중을 휘어잡는다. 최민식은 "내가 변종구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들을 적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내가 적은 글이라서 더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 같다. 대사가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고 했다. 사실 연설의 내용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변종구의 주 공약은 문래동 공업지구 내 신서울시립도서관 건립. 이를 통해 추억이 깃든 서울을 표방한다고 선언하나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대중의 표심을 사로잡기에도 부족해 보인다. 최민식은 다채로운 얼굴로 이런 약점들을 교묘하게 메운다. 때로는 힙합 모자를 눌러쓰고 춤을 추며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고, 때로는 제 식구를 잃은 것 같은 참담한 표정으로 사고를 당한 이의 가족을 위로한다."정치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들의 말투와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특히 베테랑 정치인들의 모습을 눈여겨봤다. 영화에 변종구의 전사(前事)를 설명하는 시퀀스가 없기 때문에 정치판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면서 남은 상흔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나길 바랐다. 누군가의 표정이나 행동을 흉내 낸 것이 아니다. 그들의 얼굴에서 그동안 느껴온 정치의 단상과 생각들을 점검하고 이야기에 빠지고 싶었다."

영화 '특별시민' 스틸 컷

최민식은 이 과정을 겪으면서 "정치인의 욕망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했다. "보통 권력에 중독된다고 하지 않나. 인간적인 관점에서 정치인의 불합리한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욕망을 좇아서 권력을 너무 원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가 그리는 표정은 관객에게 낯익다. '악마를 보았다(2010년)'의 장경철 같이 악독하고, '신세계(2012년)'의 강과장 같이 지독하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년)'의 최익현처럼 상황에 따라 비겁하기도 한다. 이 배역들도 그들이 사는 세계에서 정치를 했다. 정치란 누군가에게는 권력을 사용해 특정 이익을 도모하는 권위적이고 강제력 있는 행위이다. 정치의 핵심이 권력이고, 이를 행사하는 일이 정치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점에서 경험 많은 최민식은 이를 표현할 적임자였을 것이다. "극 후반에 드러내는 조폭과 같은 인상이 정치를 상징하는 캐리커처(사건의 양상이나 인간의 자태를 그 특징을 잡아 익살스럽게 표현한 그림이나 문장)처럼 새겨지길 바랐다. 어디 권력이 포만감에 젖는다고 끝나겠는가. 또 다른 야욕에 찬 이지러진 눈으로 관객을 응시하고 싶었다."

영화 '특별시민' 스틸 컷

그는 이번 영화로 많은 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길 내심 희망한다. "아무리 정치판이 더러워도 지겹다는 생각을 버리고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규칙을 만들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나. 여전히 정치를 잘 모르지만, 더 이상 권력 싸움으로 공공의 이익이 뒷전으로 밀리지 않았으면 한다. 제도도 이념도 그냥 지나칠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맑은 정신을 가진 지도자가 나와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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