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시나무 서 있던 자리에 집이 서 있다누군가 앉고 눕고 날기 위하여 세운 집나무는 어디로 갔을까나무 한 그루 사라진 일로 숲이 울지는 않는다사라진 나무도 그럴까은사시나무 가지에 새를 앉혀 놓고붓과 먹을 찾는 사이에 나무가 사라졌다나무는 물안개가 되었을까나무젓가락이 되었을까 이쑤시개가 되었을까희고 부드러운 펄프가 되었을까은사시나무 종이로 편지를 쓰면물안개 번져 잉크가 번져쓴 사람조차 읽어 볼 수 없는 편지가 될까나무는 혼자 서 있는 말뚝이네은사시나무 사라져도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나무조차 나무를 걱정해 주지 않는 숲점점 엉성해지는 숲 둘레
■ 어디 나무뿐이겠는가. 나무 같았던 사람들, 나무처럼 살다가 나무처럼 사라진 사람들, 말하자면 나 어릴 적 살던 산동네 사람들, 산동네 아래 시장 사람들, 시장 한편 지하에서 미싱 시다 하던 누나들, 그리고 그 누나들의 동생들이던 내 시시껄렁한 친구들. 어디 그 시절 그 사람들뿐이겠는가. 지금도 사라지고 있는 사람들, 고시원에서 오피스텔에서 편의점에서 쉼터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길거리에서 역전에서 마트 계산대에서 지하 주차장에서 백화점 매장에서 아파트 경비실에서 식당에서 상가에서 번듯한 직장에서 그리고 마침내 국가에서,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사라지고 사라지는 사람들. 그들은 "물안개가 되었을까/나무젓가락이 되었을까 이쑤시개가 되었을까/희고 부드러운 펄프가 되었을까". 아니, 살아 있을까, 살아는 있을까.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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