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보령기자
직장인 고모(29)씨가 시X비용으로 산 '개새' 모양의 인형이 고씨의 사무실에 놓여져 있다. (사진=고씨 제공)
[아시아경제 금보령 기자] "이거 두 개 'X발비용'으로 산 거예요."직장인 고모(29)씨가 가리킨 건 개와 새를 합친 '개새' 인형이었다. 고씨는 "평소 같으면 사지 않았을 물건인데 회사에서 화나고 열 받는 일이 있어서 '개새'를 읊조리며 위안 삼으려고 샀다"고 설명했다.또 다른 직장인 윤모(29)씨는 "어제도 X발비용으로 9000원이 나갔다"며 "평소 같으면 그냥 지하철 타고 회사 갔을 텐데 아침에 갑자기 상사 잔소리가 생각나면서 열 받았다. 몸이라도 편하게 출근하자는 마음에 그냥 택시 타고 출근했다"고 말했다. 'X발비용'은 욕설인 'X발'과 비용을 합친 단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비용으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신조어다.최근 들어 본인이 쓴 비용 앞에 특정 단어를 붙여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X발비용을 비롯해 '멍청비용', '쓸쓸비용' 등이 대표적인 예다.멍청비용은 멍청하지 않았다면 나가지 않았을 돈을 뜻한다. 대학생 이동현(24)씨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영화 상영 5일 전에 미리 예약해두고 영화관에 갔는데 영화표를 검사하는 직원이 '손님 이 티켓은 사용 기간이 지났습니다'라고 해서 당황스러웠다"며 "알고 보니 토요일 오후 6시로 예약해놓고는 일요일 오후 6시에 맞춰 갔던 거다. 이게 친구들이 말하는 멍청비용인가 싶어 헛웃음이 났다"고 얘기했다. 이 외에도 '토익 신청해놓고 시험 당일 늦잠 자느라 시험장 못 가고 날린 응시료' 등 본인의 부주의로 낭비한 돈이 멍청비용에 포함된다. 쓸쓸비용은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쓰는 비용이다. 5년째 자취하는 김진석(33)씨는 "회사 퇴근하고 자취방에 가서 혼자 있으면 너무 외로울 때가 있어서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밥 사줄 테니 나와'라고 한다거나 혼자 있는 게 싫어서 주말에 콘서트를 보러 가는 경우가 있다"며 "사실 안 써도 되는 비용이긴 한데 혼자인 것보다는 나으니까 돈을 쓰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성인 910명을 조사한 결과 80%가 스트레스 때문에 홧김에 돈을 쓰고(X발비용), 81%가 부주의로 돈을 낭비(멍청비용)하고, 71%가 외로움에 돈을 지출(쓸쓸비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데 쓴 돈도 1인당 1년간 평균 60만2000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작고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이는 소소한 것에서 재미를 느낀다는 '소소잼'이 반영된 결과다.이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X발비용이나 멍청비용 등은 그 단어 자체가 재미있어서 불쾌한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여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한 현대인들의 현명한 방법인 거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곽 교수는 "특히 X발비용의 경우 엄청난 돈을 쓴 뒤 후회하면서 거기에 대한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아 또 다른 X발비용을 쓰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며 "소소하게 쓰는 이런 비용이 스트레스를 푸는 데 더 낫다"고 덧붙였다.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