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꽃 이야기 / 조인선

  온 동네 바람 불었지요 화훼 단지에 끼기만 하면 공돈 준다는 나랏말씀에 모두 좋아라 했지요 헌데 늘 취해 산다는 허리 굽은 허 노인 허허 담배만 뻑뻑 피웠습니다 꽃이 밥 먹여 주남 동네 사람 모두들 꽃봉오리 물오르듯 화훼 단지에 열심이었습니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꺾는 건 잠깐이래나 허 노인 보리밭 밟으며 꽃은 바람 속에서 이슬 먹고 피는 꽃이 진짜라며 허허 언제부터 꽃이 돈이 됐지 진달래 개나리 흐드러지고 어느 날 갑작스런 꽃 파동 뉴스에 허 노인 의치 꽉 물고 내 뭐랬어 꽃이 밥 먹여 주남  오늘은 밤도 깊어 그 꽃이 내가 쓴 시들만 같아 서늘한 가슴에 이슬 하나 내렸습니다 
어디 꽃뿐이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그악스럽고 모질어서 무엇이든 돈으로 바꾸어 버리고야 만다. 물도 그렇고 이젠 공기마저 사고판다. 이런 판국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햇빛도 별빛도 새소리도 값을 매겨 팔고 살 것이다. 그런데 돈으로 환산해서는 안 되는 게 다만 자연뿐만은 아닐 것이다. 우정이나 사랑이나 신의 또한 그래서는 안 된다. 우정도 사랑도 신의도 흥정을 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이해득실의 문제가 되고 어떤 권력관계 속으로 말려든다. 우리가 지난 몇 년 동안 지겹게 들었던 '배신'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그 본뜻에서 한참이나 어긋나 있는 것이다. 아니 어긋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맥락 속에서 훼손되어 버렸다. '꽃이 밥을 먹여 주지 않듯' 어떤 인간적 가치는 그저 그 자체로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 우리가 복원하고 다시 다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한 해다.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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