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전리품 없이 전면 퇴각한 이유…'승부수' 거둔 이정현 대표는 향후 정치적 부담

[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나는 죽을 것"이라며 사즉생(死卽生)의 신념으로 단식에 임했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2일 오후 일주일 만에 단식 중단을 선언했다. 이를 놓고 정치권 안팎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미스터 스마일'로 불리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여당의 사퇴 압박에 정면으로 맞서 완승했다는 분석과 함께, 강경파에 휘둘려 의장에게 인신공격까지 일삼던 새누리당이 막다른 골목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출구전략'을 구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7일만에 단식을 중단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2일 오후 구급대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단식을 중단했다.

결국 마땅한 출구 명분을 찾지 못하던 새누리당이 역설적으로 이 대표의 단식에 따른 건강악화를 명분 삼아 의사일정에 복귀하게 됐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새누리당이 출구전략으로 처음에는 정 의장의 사퇴를 요구했고, 이후에는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지막에는 정 의장의 유감 표명과 재발방지책을 요구하면서 점차 단계를 낮춰왔기 때문이다. 이 대표도 "정 의장이 사퇴할 때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나 정 의장이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여기에 정 의장이 외교적 부담을 무릅쓰고 뉴질랜드 방문 일정을 취소한데 이어 국회의장들의 국제 협의체인 믹타(MIKTA) 회의마저 참석을 취소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도 영향을 끼쳤다. 국회 장기 파행의 책임뿐만 아니라 국제회의 불참의 책임까지 떠넘기겠다는 위협이었다. 이 대표는 결국 정치 인생을 건 '승부수'를 물릴 수 밖에 없었다는 해석이 나온다.◆건강 악화에 스스로 한계 느껴= 2일 여야 정치권에 따르면 급속한 건강 악화와 이를 우려한 가족과 청와대, 측근들의 불안한 시선이 단식 중단의 1차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여당 관계자들은 "구순이 되어가는 이 대표의 부모도 곡기를 끊고 있다"며 악화된 분위기를 전했다. 이는 자식 걱정에 식사를 거르고 있다는 얘기가 와전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만큼 이 대표도 정신적 고통을 짊어졌었다는 뜻이다. 김재원 정무수석도 이날 이 대표의 단식농성장을 재방문해 청와대의 뜻이라며 단식 중단을 거듭 호소했다. 이 대표는 이날 단식 중단과 함께 곧바로 인근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이송됐다. 건강 상태가 계속 악화돼 가끔 복통이 발생하고 경기를 일으키기도 했다고 당 관계자들은 전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국정감사 복귀를 전격 선언한 직후 돌출 행동이란 지적이 나오자 "내 건강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다. 많이 어지럽고, 의원들까지 고생시키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날도 이 대표는 단식 일주일 만에 후유증으로 저혈당 '쇼크' 위험에 직면했다. 단식농성장인 국회 본관 밖에선 응급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에 새누리당 의원들은 긴급 의총을 소집했고, 이 대표의 건강 문제와 향후 당의 진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이날 오전부터 당내에선 “우리가 인위적으로 (이 대표를) 병원에 옮겨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돌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단식 중단에 이르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2일 오후 7일만에 단식을 중단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국회로 출동한 119 구급대에 들것에 실려 병원에 이송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단식에 무심했던 與, 여론이 발목 잡아= 내부적으로는 당내 균열이 커지고, 집권여당이 국정감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데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됐다. 출구전략에 대한 고민도 그만큼 커졌다. 여당의 내홍과 여론 악화는 2차적인 요인이었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야권의 해임건의안 단독처리에 항의해 시작된 여당의 사상 초유 국정감사 전면 거부와 여당 대표의 단식은 곧바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여론은 부정적으로 돌아섰다. 여당 대표의 애끓는 '단식'을 지켜보는 시선은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을 외면했던 여당의 예전 모습과 맞물려 '양날의 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여당의 국감 보이콧으로 청와대의 불통 논란과 미르·K스포츠 재단에 얽힌 의혹 등이 파묻히면서 이 대표의 단식이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무능한' 국회와 청와대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형성되면서 국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까지 손상됐다. 여기에 국감 복귀를 놓고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 간에 내홍을 겪으며 여당은 치부를 드러냈다. '국감 복귀론'을 내세운 비박 의원들을 향해 친박이 막장 의총을 연출한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국감 복귀 둘러싼 여당의 내홍, 꿈쩍 않는 의장과 야당도 요인= 하지만 단식 중단 직전에 당 지도부를 비롯해 정 의장과 야당이 어느 정도 교감을 쌓았을 것으로 관측된다. 단식을 그만두자마자 정 의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국회가 걱정을 끼쳐 국민께 송구하다"며 유감 표명을 했다. 상대는 국민이었다. 정 의장은 "이 대표의 건강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단식 중단에 화답했다. 이 대표가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는 단식 중단의 속내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메시지에는 '국감 복귀'와 '의장의 중립성 보장', '정 의장에 대한 당부' 등이 담겼다. 지난달 28일 새누리당의 정 의장 규탄대회에서 나온 깜짝 국감 복귀 선언과 마찬가지로 먼저 한 발 물러서면서, 꽉 막힌 대치 국면을 허물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이 대표는 의장의 사퇴나 사과 등 정치적 협상을 위한 단식이 아니라 정치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단식이었음을 강조했다. 단식을 정략적으로 받아들이는 안팎의 분위기에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단식 7일째를 맞은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단식 중단 선언에 앞서 국회 당 대표실에서 누워 있다. 가운데는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

◆단식을 정략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부담, 정치적 완패 아닌 '절반의 승리'= 이 대표는 일주일 만에 고비를 맞았지만 그의 '목숨을 건' 단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무엇보다 다수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이 대표의 단식이 정치 인생을 건 '승부수'로 비치면서 이를 쉽게 물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지배적이었다. 반면 일각에선 그동안 여권이 정치인과 세월호 유가족 등의 단식에 부정적 태도로 일관해온 것을 거론하며, 이 대표의 단식에 반감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평소 인터넷의 댓글 등 여론에 민감한 반응을 내비쳐 왔다. 지난달 교섭단체 대표 연설도 인터넷 댓글들을 취합해 민심이라며 반영했을 정도다. 무엇보다 정 의장 사퇴를 외치며 시작한 이 대표의 단식이 정 의장과 이 대표 둘 중 하나가 물러서야 끝나는 '치킨게임'으로 치달으면서 자충수를 뒀다는 지적이 팽배했다. 그는 이번 단식 중단으로 향후 정치 행보에 큰 부담을 갖게 됐다. 스스로 '단식 카드'를 쉽게 접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흔들리던 당내 입지를 되찾고, 정국의 주도권까지 가져올 수 있는 단식을 아무런 소득 없이 그만둘 경우, 정치적 사망선고나 다름 없다는 우려도 나왔다. 저돌적이면서 꼼꼼하고 때론 즉흥적인 이 대표는 앞서 지난달 28일 여당 의원들에게 '국감 복귀'를 깜작 선언한 바 있다. 의총에서 이 같은 요청이 거부되면서 그는, 당내 입지는 물론 향후 정치 행보에도 타격을 입었다.이 때문에 당내에선 "평소 성격으로 볼 때 단식을 대충 하지도 않을 뿐더러, 어영부영 마무리짓지도 않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여야 전면 대치 정국에서 먼저 물꼬를 텄다는 점에선, 이 대표의 단식 중단이 앞으로 높이 평가받을 여지도 있다. 파행이 거듭됐던 국회는 오는 4일부터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됐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은 국민의 뜻에 순응하기로 했다"면서 "국감에 복귀해 정상적으로 국회운영에 참여하고 민생을 챙기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여야의 전면 대치는 다음 주부터 원내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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