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안동·자기근신·일벌백례 증후군' 깨고 국격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대한민국이 청렴국가로의 대변신을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28일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는 날이다. 그 동안 학연과 지연, 관행에 따라 오갔던 청탁과 작은 성의로 대변되는 선물(최대 5만원), 경조사비(10만원)가 법으로 관리된다. 식대(3만원)는 'n분의 1'의 서구식 모형을 따르게 됐다.다만, 적용대상이 400여 만명으로 광범위한데다 유권해석상 모호한 점이 적지 않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한국사회에서는 당분간 '보신(保身)전쟁'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만나지 않고 먹지 않고 주지 않는 '3무(無)'의 상황을 맞을 공산이 크다. 무심코 한 행위 때문에 '김영란법 1호 위반자'로 낙인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공무원을 중심으로 법 적용대상자들은 납작 엎드려 눈치만 보는 '복지안동(伏地眼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조차도 "28일 이후 저녁약속을 잡지 않고 있고 일단 분위기를 살펴볼 계획"이라고 털어놨다.대관업무를 해야 하는 기업들은 '셀프-근신(SELF-謹愼)'에 돌입했다. 과거 거리낌없이 이뤄졌던 식사대접 조차도 상대방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청탁성 전화 한 통 했다가는 상대방이 부패방지관에게 자진신고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대기업의 대관업무 담당자는 "앞으로는 국회나 정부 관계자와 만날 때는 식사시간을 피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청탁이 아니라 잠시 의견을 나누는 정도 외에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했다.이 같은 단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법을 탓하기에 앞서 입법 취지를 이해하고 행동양식을 혁신적으로 바꿔 생태계를 새로 조성해야 한다.이를 위해 누군가 법 위반자로 적발돼 판례가 쌓이기를 바라며 눈치만 보는 태도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한 명이 처벌을 받으면 100가지 경우의 김영란법 판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일벌백례(一罰百例)'를 기다리면 한국경제와 사회의 침체는 불 보듯 뻔하다.정부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비 골프를 권장하고 나선 것은 김영란법에 의한 내수침체 우려를 반영한 것이지만 소통하지 않는 정책은 성공할 없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전했다.결국 소통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높이는 것이 급선무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칼국수로 식사하고 커피 한잔을 나누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1인당 3만원이 생각보다 적지 않은 금액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도 "대민 접촉을 회피하는 등 소극적 행정을 하지는 않겠다"며 "제한된 범위에서 떳떳하게 여러 분야의 관계자들과 대화창구를 넓힐 예정"이라고 밝혔다.'소통'은 21세기 경제의 핵심 키워드다. 하드 스킬과 달리 21세기를 주도하는 기술이나 지식 등 소프트 스킬 발전에는 협상과 팀워크,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밑바탕에는 '소통'이 있다. 김영란법으로 소통이 단절되면 '사일로 효과(내부이기주의)'에 빠져 국가 성장에 방해를 받을 수 밖에 없다.문화의 변화를 법이 주도한다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그러나 일단 시행된 만큼 김영란법으로 인해 한국 정치ㆍ경제ㆍ사회의 청렴도가 올라가고 투명성도 강화되도록 각 주체들이 노력하는 것이 정도(正道)다.박성호 기자 vicman1203@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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