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기려해'…'국민만 불안·답답'
[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가 총합(總合)적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여·야·청은 한치의 양보없는 대치국면에 빠졌고 노동계는 임금인상과 성과연봉제 도입 반대 등의 명목으로 파업에 돌입해 생산 차질과 함께 구조개혁을 발목을 잡고 있다. 만성적인 소비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소비절벽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객관적 위기가 극대화화고 있지만 내부 관계자들은 오히려 '무드셀라 증후군'에 빠졌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무드셀라 증후군은 과거의 일을 회상할 때 나쁜 기억은 빨리 지워버리고, 좋은 기억만을 남기려는 기억왜곡현상을 일컫는다. 과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의 성공적 극복과정에 대한 자부심이 현재의 위기를 체감하기 보다 이 또한 이겨낼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한국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7%로 전망하고 있다. 이마저도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미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하향조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2.9%로 낮췄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수출은 지난달 20개월만에 감소세에서 벗어나 전년동월대비 2.5% 늘었지만 이달 들어 10일까지 수출은 이미 3.6% 감소했다. 한진해운발 물류대란과 갤럭시노트7 리콜 사태에 현대·기아차 파업 등까지 겹쳐 9월 수출은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소비침체는 더욱 우려된다. 지난 6월 말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는 사상최대 수준인 1257조3000억원으로, 올 상반기에만 54조2000억원이 늘어났다. 가계는 부채 증가와 함께 저출산 고령화에 따라 지출 규모를 더욱 줄이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 등 외부여건이 악화될 경우 금융시장 불안은 물론 가계부채 문제가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 19일 한국 경제의 향후 5년(2016~2020년) 잠재성장률을 연평균 2.9%로 예상했다. 국가가 보유한 자본, 노동 등 생산요소를 모두 활용해도 성장률 3%를 달성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저출산 고령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데다 한국 기업은 이미 중국에 추월당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실정이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해온 노동·공공·교육·금융 등 4대 구조개혁 과제 가운데 핵심인 노동·교육 개혁은 사실상 실패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1일 "이대로는 안된다. 지금의 산업구조와 노동시장, 교육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성장도, 일자리 창출도 기대할 수 없다"면서 "주력산업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데 신산업은 낡은 규제의 족쇄에 발이 묶여 있고 경직적 노동시장은 청년 일자리 창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오는 28일로 예정된 김영란법 시행은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많다. 단기적으로 소비절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가 400만명에 달하고, 이들이 법 시행 초기에는 '무조건 약속을 잡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벌써부터 고급식당과 회원제 골프장, 공연장, 화훼업계 등에서는 매출감소를 확정적으로 보고 있다.공직사회는 더욱 움츠러들고 있다. 중앙부처가 세종시 이전이 마무리되고,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외부인과의 접촉에 몸을 사리고 있다. 정권 말기에 접어들면서 '눈에 띄지 말자'는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다 조그만 실수라도 하는 것보다 일을 벌이지 않는 편이 훨씬 신상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기획재정부 국장급 공무원은 "세종시로 옮기면서 업무효율이 너무 많이 떨어진 것은 물론 기업이나 단체 관계자들을 만나서 업계나 현장 의견을 들을 시간도 없다"면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바짝 엎드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정권이라도 잡은 듯 기세등등한 야당과 국정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청와대의 정면 충돌로 국정은 삐걱거리고 있다. 야당이 주고 받고 식의 구태한 정치 놀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박 대통령은 지난 24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경주 강진 등을 거론하며 "삼추여일각(三秋如一刻·3년이 잠깐 같다)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조급한 마음이 드는데, 우리 정치의 시계는 멈춰선 듯 하다"고 말했다.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를 겨냥한 것이지만, 오히려 박 대통령이 국정지도자로서 집권기간 동안 야당을 제대로 설득하거나 품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치·노동·사회 갈등이 대척점에 서면서 가계의 불안감도 커지고 이는 소비위축으로 직결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연말까지 경제주체들의 소비심리가 지속적으로 위축된다면 내년 이후 우리경제는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겨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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