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도기자
사진제공=중앙선관위·한국정치학회
21일 오후 1시 50분 계표 종료와 함께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검증을 지켜보기 위해 서울 종로구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 대강당에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는 차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부정선거 의혹으로 개함되지 못했던 서울 구로구을(乙) 부재자 투표함은 29년 만에 개함됐다. 오전 9시 30분, 행사를 주관한 강원택 한국정치학회장이 개함과 계표를 선언하자 학계·정당·시민단체 참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봉인된 판도라의 상자가 문을 열었다. 계표가 완료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4시간 남짓. 투표함에 달려있던 자물쇠는 절단기에 의해 3초만에 으스러졌다. 하지만 투표함은 끝내 침묵했다. 지금까지 제기돼 온 부정투표 의혹을 속이 시원하게 불식시키지 못했다. 투표함을 열기 전 일부 참관인들이 투표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행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검표작업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사진=문화방송 캡처
투표함은 지난 1987년 12월16일부터 이날까지 개표되지 못한 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수장고에 보관돼왔다. 당시 구로구을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가 한창 진행 중이던 오전 11시 30분께 부재자 우편투표함을 개표소로 옮기려다 투표함을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은 빵 봉투와 상자에 뒤섞여 화물차에 실린 채 반출되려던 투표함을 부정투표함이라 규정했다. 이후 사흘간 2000명 넘는 시민이 투표소가 설치된 구로구청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였다. 정부는 4000여명의 경찰을 투입해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후계자였던 노태우 후보의 당선으로, 사태는 진실 규명 없이 일단락됐다. 선관위는 불과 4000여명의 표가 있던 부재자 투표함이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해당 투표함을 무효처리했다. 이후 수거된 투표함은 과천의 중앙선관위 수장고로 옮겨져 보관돼 왔다. 이날 행사장에는 당시 서울대 학생대표로 선거감시를 위해 현장에 있던 박성준(51)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경찰이 회수해 간 투표함을 어떻게 선관위가 갖고 있었는지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며 항의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제3자인 정치학회가 나서 투표함을 개함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도 물었다. 박씨는 당시 구로사태 참가자 모임인 '구로구청부정선거항의투쟁동지회'(구로동지회) 소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