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호도박물관 김재원 관장]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먹지도 못하는 호두 연구에 20여년 투자[아시아경제 문승용]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말처럼 말 못할 어려움과 절망이 있었지만 내가 판단하고 내가 저지르고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기에 어렵다고 탓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다.” 인생의 절정기인 중년인생을 먹지도 못하는 호(도)두 연구에 20여년을 매달려온 괴짜가 있다. 주인공은 전남 장흥군 장흥읍 귀족호도박물관 김재원(58) 관장이다. 김 관장은 20여년 전 임·농업의 6차 산업을 위해 30년 중장기 계획을 세웠다. 그가 선택한 것은 먹지도 못하는 장흥 호두, 임산물이었다. 먹지도 못하는 호두로 많은 돈을 투자해 박물관까지 개관한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는 비아냥도 들어야했다.그가 박물관 개관을 추진할 당시인 1997년 11월에는 IMF 구제금융 시기였다. 1997년 초 원화는 1달러에 800원 정도 하던 것이 같은 해 연말 즈음 1800원을 넘어서는 등 급격한 원화가치가 하락했다. 원유, 원자재, 자본재 등을 수입에 의존하다보니 물가폭등은 물론 지속적으로 경기침체가 이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침체 현상) 현상을 보였던 시기이다.게다가 6차 산업이라는 용어도 생소했던 시기에 박물관 개관을 추진하면서 우둔하고 바보스럽다는 주의의 따가운 눈총도 받아야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옛말을 실천했다.1998년 대산농촌문화재단에 ‘남부지역 자생수목 수출 상품화 기술개발’의 논문을 발표해 임업기술보급에 앞장섰다. 장흥 호두는 후피(厚皮)호두로 껍질이 두껍고 단단해 우리가 흔히 먹는 ‘호두알맹이’는 없다. 김 관장은 이런 장흥 호두를 전국을 넘어 세계에 알리고 박물관을 개관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2002년 국내·외 최초로 임업관련 사립 전문 등록박물관인 ‘귀족호도(두)박물관’을 개관·운영하면서 귀족호두의 영구적 생산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2.1ha의 단지를 조성, 계획에 따라 전국 유일 귀족호도박물관으로 변신시켜 연간 2억 원의 소득을 올리며 6차 산업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산림조합중앙회(회장 이석형)는 이 같은 김 관장의 공로를 높이 사 6월23일 “임업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지속가능한 임업발전에 기여한 우수 임업인을 발굴해 시상”하는 ‘2016년 제2분기 임업인으로’ 선정해 표창과 부상을 수여했다.임산업의 선구자이자 국가대표로 평가받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농촌지도사 공무원 사직 후 ‘귀족호도박물관’ 개관까지산과 들과 강과 바다, 호수가 어울린 ‘힐링의 고장, 생태의 고장’ 전남 장흥군은 ‘도자기의 고장’ 강진군과 ‘녹차의 고장’ 보성군이 인접해 있다. 장흥은 편백나무 숲이 울창해 치유의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매년 여름이면 물축제를 찾는 관광객이 한해 백만 명이 넘는다.
[전남 장흥귀족호도박물관 입구]
광주에서 화순, 보성을 지나 장흥까지는 약 70Km. 도로가 잘 정비돼 있어 자동차로 대략 1시간 가량 소요된다. 귀족호도박물관은 장흥읍에 위치해 있어 찾아가는 발길에 수고스러움을 덜 수 있다.김재원 귀족호도박물관장은 30대 후반에 후피호도를 장흥 명품특산물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30년 중장기 계획’을 세워 하나 둘 실천하기 시작했다. 김 관장은 “우리 임업을 문화·예술·역사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내 상상력이고 도전하고 싶었던 꿈과 희망, 포부였다”며 20여년 간 몸 담아왔던 공직에서 42세가 되던 해인 1999년 사표를 냈다.어렸을 적부터 흙과 함께 지내는 것을 좋아했던 김 관장은 나무와 함께 흙을 만지고 지렁이와 함께 농촌에서 자연을 품고 살겠다는 각오를 마음속에 항상 간직하고 있었다. 충남 예산농업전문대학 농업학과를 졸업한 그는 ‘성장과 자립’이라는 사회적 환경에 의해 1979년 농촌지도소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에게 주어진 주 업무는 분재를 하는 일이었다. 매일 나무와 함께 근무하면서 전라남도 분재 강사로도 활동했다. 농촌지도사 분재연구회라는 모임도 만들어 연구도 하고 분재관련 일을 도맡아 해오다 300년 전부터 장흥에서만 나오는 손 운동, 지압용 호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장흥호두는 주름과 골이 깊고, 어른스럽고, 의젓하고, 고태미가 넘쳐 세계적으로 명성이 지대하다고 평가된다. 또 손 운동 문화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에게 장흥호두는 최고의 인기를 받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이름도 없는데다 깐깐한 호두, 못 먹는 호두, 놀이게 호두로 알려져 고민에 빠졌다. 고유명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 관장은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다. 오랜 역사와 연륜을 함께한 호두에 귀족을 붙여 ‘귀족호두’로 명명하고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마쳤다. 지방화시대에 걸맞게 지역 특화상품인 호두를 처음으로 브랜드화에 성공한 김 관장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산과 부부의 퇴직금, 20년 동안 벌어 놓은 돈을 다 쏟아 부어 2001년 ‘장흥귀족호도박물관’을 준공, 2002년 개관했다. ◆30년의 중장기 계획 “융·복합 6차 산업에 도전하다”40대 초반 김 관장이 임업의 길로 들어설 당시 자녀들은 초등학생이었다. 이 당시 미래가 보장된 공무직을 사직하고 임업에 뛰어들겠다는 것은 자살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애들 걱정도 많았다. 집사람도 불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박물관이 뭔지도 모를 시절에 먹지도 못할 호두박물관을 짓겠다고 했으니...”
김재원 장흥호도박물관장은 6차 임산업을 위해 '확장과 성장의 10년, 내실과 성장의 10년, 안정과 성장의 10년' 30년 중장기 계획을 세워 연구실 내 한켠에 걸어두고 실천해 왔다.
박물관을 개관한 김 관장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확장과 성장의 10년’ 기초단계로 계획하고 이 기간에는 귀족호도박물관을 설립·등록하고 4천여평의 부지에 기반조성을 시작했다. 이 기간 그의 나이는 44세에서 53세이다. 그리고 54세부터 63세의 시절인 2011년부터 2020년까지는 ‘내실과 성장의 10년’이라는 정착단계를 목표로 브랜드를 양성하기 위해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 이 기간에는 투브랜드를 양성하고 양묘, 역점, 육성, 요소별 신활력이라는 부제를 계획했다.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안정과 성장의 10년’이라는 자립단계, 그의 나이 64세에서 73세, 이 기간은 ‘문화향유 복지센터’로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베풀고 살겠다는 계획이다. 이렇듯 3단계로 나뉜 30년의 중장기 계획을 갖고 준비해 온 김 관장은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했던 후피호두를 반드시 블루오션으로 만들겠다는 집념과 도전을 꾸준히 실천해왔다. 이것이 융·복합 6차 산업”이라고 강조했다.“창조와 혁신은 바로 상상력이고 감성이다.”는 인생철학을 갖고 있다. “남들보다 두 배 열심히 일하면 두 배에 달하는 대가를 얻을 수 있지만 남들 한번 생각할 때 김 관장은 100번 1000번 생각한다”는 것이다. 김 관장은 “6차 산업이 감성산업이기 때문에 많은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며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고 말한다.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6차 임업을 위해 외길을 고집해 온 그는 귀족호도박물관의 영광, 2000여명이 넘는 귀족호도마니아 팬클럽이 후원하는 임업인의 희망등불이 됐다.“1차 산업은 재배생산이다. 2차는 가공이며 3차는 서비스마케팅이다. 1~3차를 복합해 경영하는 농가는 훌륭한 농가요, 모범 농가이고, 선도 농가이고, 지도자라고 평가한다. 1~3차 산업을 복합경영해도 소득이 여의치 않으니 6차 산업이 나온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귀족호도가 좋다고 떠들어 대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아파트 모델하우스와 자동차판매 전시장처럼, 그래서 박물관을 개관한 것이다.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 4차 산업이기 때문이다.”“만져보고, 골라보고, 따보고, 조제해보고, 마음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체험교육이 5차 산업이다. 6차 산업은 1~5차까지 융·복합해 행사, 굿, 잔치 한마당을 개최하는 것이다.”
소비자 마음을 여는 6차 산업을 위해 지난 2003년 11월4일 ‘장흥귀족호도의 날’을 선포했다. 생일을 지정하고 품평회와 심포지엄, 농악도 울리는 흥겨운 한마당을 기획해 매년 꾸준히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소비자 마음을 여는 6차 산업을 위해 지난 2003년 11월4일 ‘장흥귀족호도의 날’을 선포했다. 생일을 지정하고 품평회와 심포지엄, 농악도 울리는 흥겨운 한마당을 기획해 매년 꾸준히 행사를 이어오고 있으며 올해 14회를 맞이한다. ◆장흥귀족호도박물관 일각부터 육각 ‘흥화’까지…공예품 다수 전시귀족호도는 옛 고에 달월(胡), 세월을 의미하는 ‘늙을 호’로 이야기한다. 귀족호도 박물관에서는 ‘장수 호’로도 이야기 한다. 거북등 같이 생겨서 호도를 가지고 있으면 건강도 좋지만 장수한다. 장흥귀족호도박물관에는 가격이 저렴한 일각부터 1억 원이 넘는 ‘육각 흥화’ 호두가 전시돼 있다. 비매품으로 양각 정일품 500만 원, 사각 300만 원, 삼각 100만 원, 전 세계적으로 딱 한 벌밖에 없고, 세계적 천연기념물, 세계적 국보급인 육각 흥화 이것은 1억 원이 넘다. 육각은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국보급 호두이다. 육각이 있는 것은 귀족호두박물관의 복이다.
일각 태양, 양각 음양, 삼각 천지인, 사각 사랑, 오각 대일품, 육각 흥화는 전남 장흥호도박물관에 전시돼 있다.(사진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일각은 태양, 양각은 음양, 삼각은 천지인, 사각은 사랑, 오각은 대일품, 육각은 흥화라고 칭한다. 귀족호두는 보통 양각, 삼각 ,사각 세 종류로 분류된다. 천지인을 의미하는 삼각부터 명품이다. 4각은 십자호두라고 해서 행운을 뜻한다.양각은 정상에서 능선이 두 쪽으로 나뉜다 해서 양각이라고 하고 삼각은 세쪽으로 나뉘어서 삼각, 4각은 열십자로 돼 있다. 자연의 섭리와 우주 삼라만상의 원리가 다 양각으로 기본각이다. 음양원리로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낮과 밤을 뜻한다. 삼각, 사각은 돌연변이로 일부 나오기 때문에 매우 비싸다.명품으로 판매되는 양각은 10만 원부터 거래된다. 박물관에는 300만 원이 넘는 호도와 비매품으로 1억짜리도 있다. 귀족호도는 10만 원짜리 이상 명품은 매년 전체 생산량의 5%만 나온다. 예전에는 10만 원짜리 이하 45%는 모두 땅에 묻었다. 그러나 지금은 보급형 관광상품으로 박물관을 찾은 할아버지 할머니들, 새로 시작한 사람들에게 1~2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그리고 나머지 50%는 관광상품도 안되고 정말 볼품없는 호도들은 핸드폰, 열쇠고리, 브러치, 마고자, 목걸이, 귀걸이, 염주 등 공예품, 악세사리로 만든다. 호두 1004개를 붙여 만든 호도 대장군, 백제시대에 옥으로 만든 호도, 이순신 장군도이 호도로 잔을 만들어 썼던 도배잔 등도 전시돼 있다.호두는 사람 두뇌하고 닮았다. 슬라이스로 귀족호도를 절단해 보면 매우 아름답고 창호문틀 모양처럼 보인다. 모든 지구상의 디자인은 호두열매에서 나왔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문화·예술·역사로 승화시킨 감성 임업…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성공
[장흥호도박물관 내 식물체험관]
김 관장은 무엇이든 즉흥적으로 시작한 것은 단 한 번도 없을 만큼 철저히 준비된 인생을 보내왔다. 기초단계, 정착단계, 자립단계가 있듯이 8살 초등학교 시절부터 42세에 사표를 내기 전까지 34년간 준비를 해왔다. 초등학교 시절 시골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흙에서 농촌에서 뭔가 해보자는 게 희망이었다. 그래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시골에서 다녔다. 농업대학을 다니면서도 항상 농업이 ‘나의 꿈과 희망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할까 생각을 했다. 34년간 준비해 온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20여년 간의 공직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사직서를 냈다. 김 관장이 사직서를 제출하기 직후에는 아내인 김영희(57) 씨도 김 관장의 설득에 공직생활을 접었다. 이 당시 김 관장은 그동안 계획해 왔던 6차 산업에 도전하기 위해 아내에게 “이제 쉬면서 가정을 돌보는 것은 어떻겠냐”며 자신의 계획을 숨긴 채 설득했다. 이 같은 김 관장의 계획을 전혀 몰랐던 아내는 흔쾌히 승낙하고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곧바로 김 관장은 아내 몰래 사직서를 제출했고 수개월이 지나 소문이 돌고 돌아 아내는 김 관장이 사표를 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이런 결정을 선택했던 김 관장은 “뜻이 있는데 어떻게 부부가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수가 있느냐? 한 곳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성공이라는 보장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처럼 말 못할 어려움과 절망이 있었지만 내가 판단하고 내가 저지르고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기에 어렵다고 탓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다.” “우리 농업을 문화·예술·역사로 승화시키는 감성농업으로 착안한 것은 통찰력과 혜안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올라가는 것이 미래다. 과학에서 흐름을 봤다. 우리 임업도 농산업도 어디로 갈 것인지 예측해야 된다. 이런 예측없이 시작한 사람은 무조건 망한다. ‘워크하드’ 열심히 일하면 남보다 두 배 이상 자라기 어렵다. ‘싱크하드’ 열심히 생각하면 열배 백배 더 잘할 수 있다. 구상 그것이 상상력이다.”
[300년 수령 '장흥귀족호도나무']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야 한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반대다. 남을 따라하지 않고 반대로 하는 것, 모범생은 시키는 일하고 자기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면 모범생이다. 잘 만들어 놓은 교과서 잘잘잘 외워서 100점 맞으면 모범생이다.”“그러나 창의력이라는 것은 남이 가지 않는 길, 남이 밟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장흥호도박물관은 조연환 전 산림청장이 두 번, 현 이석형 산림조합중앙회장이 방문해 기념식수를 가졌다. 산림 최고의 수장들이 박물관을 찾아온다는 것은 스토리와 감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분을 모시기 위해 스토리를 만들었고 방문한 후에는 감성을 넣어 마음을 움직였다. 상상력이고 창의력이 결합된 결과물에 모두가 만족하셨다.”김 관장은 전국에 있는 나비를 함평나비로 만든 이석형 산림조합중앙회장을 감동시키기 위해 스토리를 만들었다. 박물관 입구에 방문기념 플랑카드를 걸었다. 스토리가 있는 기념식수, 감성이 묻어 있는 기념식수를 위해 지난 태풍에 쓰러진 300년 된 호두나무를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아 3년 전에 미리 준비해 둔 300년 된 호두나무 2세대 묘목을 기념식수로 정했다. 그리고 푯말을 준비해 제작했다.“이 나무를 산림조합중앙회장님이 오셔서 기를 불러 일으켜 주셨다. 이 나무를 보시는 모든 분들도 기를 받아서 좋은 일들만 항상 가득하길 바란다.”고 외쳤고 푯말을 걸었다. 기념식수 행사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크게 박수를 쳤다. 이석형 중앙회장도 기뻐했다. 대성공이었다.“군청을 들리고 산림조합을 들리고 특강을 하고 이 회장님이 장흥에 오셨던 일정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일정이다. 그러나 난 기념식수를 위해 준비한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영원히 이 회장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이게 내 기법이다. 감성이고 융·복합이고 6차 산업이다. 이석형 회장님의 마음을 열게 한 것이다.” 김 관장은 이석형 중앙회장의 마음을 샀다. 이 회장은 박물관을 떠나면서 3만5천부 발행되는 산림지에 김재원 관장이 운영하는 귀족호도박물관을 소개하라고 지시했고 가는 길에 잊혀지지 않았는지 ‘임업인의 상’을 추천하라는 지시도 함께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감성이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내가 열심히 하면 된다.”미국, 캐나다, 칠레, 호주, 뉴질랜드산 호두가 국내 소비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도 김 관장은 끔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남들이 꺼려하고 도전하지 않는 것을 찾아 연구와 노동을 투자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마음을 통찰하고 그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꾸준히 상상하는 창의력을 발굴해내서가 아닐까?
[장흥호도박물관 내 무늬동백나무 생태관]
김 관장은 무늬동백나무를 연구·개발해 현재 보급단계에 와 있다. 밋밋한 녹색 잎에 하얀 무늬가 그려진 동백나무를 개발하고 있는 그는 대체 임산물로 동백나무를 선택해 제2의 임산업을 준비하고 있다. 김 관장은 지난해에는 ‘나무가 책이다’라는 주제로 총 86회 3000여명에게 인문학 강의를 펼치며 산림에 대한 우수성을 전국에 전파하고 있다. 올해는 ‘숲 그리고 나무’라는 인문학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그는 특히 장흥 토속 향토문화인 손 운동, 3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손 운동 문화를 앞으로 1천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우리 임업의 우수함이 영원히 역사 속에 남기기 위해 13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3년간 집필해 ‘장흥귀족호도박물관’이라는 책을 2014년에 발간해 판매하고 있다. 이 책에는 귀족의 역사, 품종분류 등 여러 가지 건강법을 종합적으로 기술했으며 전국 마니아들이 가지고 있는 귀족호두가 모두 다 실려 있다. 문승용 기자 msynew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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