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합병 검토’ 발언으로 구조조정 중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격랑에 휩싸였다. 임 위원장이 ‘정상화가 마무리되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양대 해운사의 '빅딜'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금융당국은 용선료 협상과 채무재조정으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양보를 이끌어내고 해운동맹체 가입을 통해 영업기반을 확보하는 것으로 양대 해운사 구조조정의 틀을 잡고 추진해왔다. 이를 통해 두 회사가 재무구조가 정상화되고 영업이익이 안정화된 뒤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첫번째 시나리오였다. 해외 선주, 사채권자, 해운동맹체 회원사들과의 자구적인 협상 노력 끝에 양사 모두 자구안을 성공시키고, 경영 상황이 정상화 궤도에 오르면 굳이 두 회사를 합칠 필요가 없다는 논리에서다.여러 고비는 있었지만 현대상선의 자구안 이행이 속도를 내면서 양사의 합병은 당분간은 현실성이 없다는 게 업계와 금융권의 공통된 시각이었다. 하지만 전날(13일) 임종룡 위원장의 발언은 이 같은 시각과 전망을 뒤집었다. 일각에서는 두 회사의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최대주주가 되면, 산업은행의 경영권 아래서 본격적인 합병이 추진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글로벌 해운선사간 경쟁력을 고려해 채권단이 관리하는 양대선사의 합병론이 다시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결국 자구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선사가 그렇지 않은 선사를 흡수합병하는 수순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구조조정 초반만 해도 글로벌 해운업계 8위 선사인 한진해운이 15위인 현대상선을 흡수합병할 수 있다는 전망이 대체적이었다. 두 회사 모두 매출 대부분이 컨테이너선사업 부문에서 발생하고, 주요 항로도 북미, 유럽으로 경쟁력이 겹친다는 점에서 한진해운이 현대상선을 흡수합병하는 두번째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됐다.해운업계 관계자는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운영인프라·선대 구성·선복량·인지도 등이 상대적으로 나은 쪽이 합병주체가 되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자율협약 전후로 드러난 재무 상황에서 한진해운의 정상화가 현대상선 보다 훨씬 험난할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랐다. 한진해운은 새로운 해운동맹인 '디 얼라이언스'에 합류해 현대상선보다 앞선 상태로 조건부 자율협약을 시작했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최대 용선주인 캐나다 시스팬이 공개적으로 용선료 연체 사실을 밝힌 데 이어 그리스 나비오스가 용선료 1000억원 연체로 한진해운의 벌크선박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억류하는 등 유동성 위기가 수면 밖으로 드러났다. 당장 용선료 체납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나서 '소유주가 있는 만큼 개별 회사 유동성은 직접 해결해야 한다'며 총수일가의 유동성 위기 해결을 주문하고 있지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 용선료 체납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한진해운이 용선한 선박 대부분은 오너 한 명이 선박을 직접 소유한 구조가 아니라 여러명의 투자자들이 출자해 공동 지분을 가진 경우가 많아 협상 주체가 현대상선 보다 훨씬 많고 협상 과정도 험난할 것으로 점쳐진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임 위원장의 발언은 총수일가의 추가 지원과 정상화를 압박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진해운 자구안 이행이 속도를 내지 않은 한 양대 선사의 강제 빅딜이 더 이상 불가능한 시나리오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산업부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