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는 약’ ‘회로회복제’ 마약 둔갑…각종 마약류, ‘쿠키’ ‘영양갱’ 등으로 속여 밀수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알약을 먹으면 강한 신체접촉 욕구가 일어나는데….” 이른바 ‘포옹 마약(hug drug)’으로 불리는 MDMA는 원래 ‘살 빼는 약’이었다. 1914년 독일 의약품 회사에서 식욕감퇴제로 개발했는데 강력한 환각작용에 따른 심각한 뇌 손상이 문제가 돼 시중유통이 중단됐다. 하지만 70년이 흐른 후 사랑의 묘약(?)으로 둔갑했다.#이른바 ‘물뽕’으로 불리는 GHB는 원래 근육강화제로 개발됐다. 음료에 몇 방울 타서 마시면 10~15분 이내에 약물효과가 나타난다. 남용하면 혼수상태에 이르고 발작을 일으키지만, 효과가 빠르다는 점에서 성범죄에 이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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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은 원래 무감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narkotikos’에서 유래했다. 혼미함을 일으켜 통증을 완화하는 물질이다. 마약은 원래 살 빼는 약, 피로회복제 등으로 개발된 경우도 적지 않다. 의약품으로 개발됐지만 엉뚱한 용도로 활용돼 마약으로 분류한 사례도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마약류로 평가받는 이른바 메트암페타민(필로폰)도 마찬가지다. 대일본제약회사가 ‘히로뽕’이라는 상품명으로 개발했는데 잠을 쫓고 피로를 회복하는 용도였다. ‘Philpon’은 일하는 것을 사랑한다는 의미의 희랍어 ‘Philoponos’에서 유래됐다. 프로포폴은 영국 ICI사가 개발한 수면마취제로서 수면내시경을 할 때 쓰이는 의약품이다. 피로감을 해소하고 환각을 일으키는 효과 때문에 ‘연예인 환각제’로 더 잘 알려졌다. 강제출국당한 방송인 에이미는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는데 프로포폴 복용 연예인이 밝혀진 것보다 훨씬 많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성범죄에 가장 많이 악용된 약물로 알려진 ‘졸피뎀’은 원래 불면증 치료에 사용되는 수면제다. 술과 함께 먹으면 기억을 잃거나 환각증세가 일어나 반드시 의사 처방이 필요한 약품이다. 하지만 의사처방 없이 불법 유통되면서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도 있다. 40대 카페 업주 손모씨는 대학생 등 여성 16명에게 41차례에 걸쳐 졸피뎀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 뒤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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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마약에 노출된 인구는 2억4600만 명(2013년 기준)에 이른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마약류 사범은 9742명으로 집계됐다. 마약투약 5082명, 마약밀매 2538명, 마약밀수 389명 등이다.마약밀수에는 기상천외한 방법이 사용된다. 인천지검은 2010년 11월 영양갱과 비누로 위장한 필로폰 1㎏을 적발했다. 창원지검은 2009년 6월 대마 가루와 밀가루를 혼합해 만든 ‘대마 쿠키’ 60개를 국제특급우편으로 밀수입하려는 것을 적발했다. 검찰은 “1980년대까지는 한국이 주요 메트암페타민 밀조 국가로서 세계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면서 “1990년대 들어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밀조 조직이 거의 와해해 외국산이 밀수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SNS를 활용해 불법암시장인 ‘다크넷’을 통해 마약을 들여오고, 디지털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대금결제, 자금세탁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검찰은 “1988년 5000원~1만 원에 거래되던 1회 투약분 필로폰 가격은 단속 활동 강화로 1991년부터 10배 이상 폭등했으나 2001년부터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1회 투약분 가격은 10만 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마약류는 약물사용 욕구가 강제적일 정도로 강하고, 사용약물 양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며, 사용을 중지하면 온몸에 견디기 힘든 금단현상이 일어난다. 마약류 중독은 본인은 물론 타인에게도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정모씨는 2002년 1월 부산의 한 모텔에서 필로폰 환각 상태에 빠져 머리를 들이받는 자해소동을 벌이다 과다 출혈로 숨졌다. 김모씨는 2014년 6월 필로폰 환각 상태에서 내연녀 안구를 적출하는 등 엽기적인 범죄를 벌이기도 했다. 이모씨는 2002년 1월 대전의 한 여관에서 필로폰 환각 상태에서 처제를 성폭행하려다 실패한 뒤 부인, 처제, 딸 등을 인질로 삼고 경찰 20여 명과 대치하며 난동을 벌이기도 했다.
마약류 밀매를 둘러싼 보복범죄가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도 있다. 1999년 6월 부산 폭력조직 ‘유태파’ 부두목 김모씨가 필로폰 1㎏ 판매대금 7000만 원을 갚지 않고 수사기관에 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배모씨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은 멕시코나 남미 국가처럼 거대 마약조직이 활개를 치는 곳은 아니지만, 폭력조직이 마약과 연계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2013년 마약류 범죄에 연루된 조폭은 25개파 38명, 2014년에는 4개파 69명으로 조사됐다. 전체 마약류 사범 중 조폭 비율은 0.7%(2014년 기준)에 불과하지만,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2014년만 해도 서울 이글스파, 인천 신공항파, 부산 칠성파 등 폭력조직원들이 마약 밀매 혐의로 적발됐다. 검찰은 “국내 폭력조직은 미국 마피아, 일본 야쿠자, 중국 삼합회 등 기업형 국제범죄조직과 달리 마약류 범죄 개입을 금기사항으로 여겼지만, 2010년도부터 조폭이 마약밀매와 밀수에 개입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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