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배운 게 한”, 함평군에 장학금 1천만원 기부한 차형택 옹

지난 21일 불편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 함평군을 찾은 차형택(81. 오른쪽) 옹이 안병호 군수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있다.

"33년전 방앗간 구입하며 함평과 인연 맺어" "여생 보내려 ‘제2의 고향 함평’떠나며 지역 위해 쾌척" [아시아경제 노해섭 기자] “못 배운 게 한이 돼 우리 함평 학생들의 배움에 도움을 주고 싶다” 지난 21일 불편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 함평군을 찾은 차형택(81) 옹이 안병호 군수에게 장학금을 내밀며 한 말이다. 여생을 보내기 위해 넉넉지 않은 세간을 정리해 김제로 거처를 옮기면서, 지난 33년간 울고 웃으며 지내왔던 ‘제2의 고향’ 함평을 위해 그간의 고마움과 배우지 못한 한을 담아 장학금을 기부한 것. 장학금을 쾌척하기까지 그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순천에서 서당을 하던 차 옹의 가정은 1918년 일제가 ‘서당규칙’을 제정해 탄압하자 급격히 가세가 기울었다.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문턱을 밟아보지도 못했다. 배움이 없어 뚜렷한 직업을 가지지 못하고 막노동판을 전전했지만, 끈기와 성실함으로 제법 많은 돈을 모았다. 그러던 중 1983년 친구의 소개로 함평군 월야면의 한 방앗간을 구입하면서 함평과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시설도 좋고 손님도 많다던 친구의 말과 달리 낡고 허름한 데다 손님도 없는 곳이었다. 친구에게 속아 방앗간을 구입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열정을 바쳐 일했다. 또 마을 일이라면 내 일처럼 나서 주민들로부터 평판도 좋았다. 그 덕분에 방앗간도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넉넉지는 않지만 이웃과 함께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살았다. 13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3~4년 전부터는 건강이 나빠져 방앗간 문은 닫았지만 지역 사랑은 계속됐다. 지난해에는 자기보다 어렵게 사는 이웃들을 위해 1200만원 상당의 쌀 300포를 기증하기도 했다. 올해 초, 평생 꾸준히 다녔던 김제의 한 교회 근처에서 여생을 보내기 위해 살림을 정리하고 마을 주민과 석별의 정을 나눴다. "30여 년을 산 함평을 떠나자니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는 차 옹은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항상 자격지심으로 따라 다녔다”면서 “그간 나를 아끼고 사랑해 준 함평을 위해 좋은 일도 하고, 배우지 못한 한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장학금을 쾌척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함평군은 이 장학금을 인재양성기금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함평군인재양성기금은 우리 지역의 우수한 인재를 발굴·지원해 지역발전에 이바지할 동량으로 키우기 위한 것으로, 지금까지 41억8400만원을 조성해 3056명에게 20억600만원을 지급했다.노해섭 기자 nogary@<ⓒ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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