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내 '사모곡' 임채무의 사랑 풀스토리

어쩌면 당신과 나는이 세상 하나뿐인 천생연분인 것 같아요이렇게 또 죽고 못 사니눈에서 잠시 멀어지면 이별인듯 아쉬워하고다시 또 눈이 마주치면망울망울 애끊는 사랑다시 또 보고 다시 또 봐도나의 사랑 아닌 곳 하나 없으니당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사랑 사랑 내 사랑탤런트 임채무(66)가 최근 낸 앨범의 신곡 '천생연분'(정기수 작곡, 민들레 작사)의 가사이다. 이 절절한 노랫말은 지난 여름(6월16일) 췌장암으로 돌아간 아내 박인숙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았다. 활기찬 록비트를 타면서 묵직한 저음으로 토해내는 사부곡(思婦曲)이 가슴을 친다. 그는 연기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미 정규 앨범을 네 차례(1985년, 1986년, 1993년, 2002년) 낸 중견 가수이기도 하다.5년 전 아내의 췌장 담관에 종양이 생겼고 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청천벽력의 선고를 받았을 때 임채무는 삶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암에 좋다는 식품과 한약재를 구하러 천지사방을 돌아다녔고 그 덕분이었는지 6개월 시한부는 5년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하늘은 더 이상의 시간을 허락해주지 않고 그녀를 데려가고 말았다. 그의 전재산을 모두 아내 앞으로 등기해놓았고 그가 수년전 사들이 두리랜드까지 그녀 소유로 해놓을 만큼, 그의 모든 것을 아내에게 바치고 싶었던 그였다. 이 안타까운 사랑이 태어나던 첫 풍경 속으로 돌아가본다.임채무는 무명 시절,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어떤 여인을 알게 되었는데, 그분은 아내가 된 박인숙의 어머니였다고 한다. 인연은 그렇게 복선(伏線)을 깔아놓고 다가오는 것인가. 1978년 탤런트 임채무와 성우 박인숙(1976년 MBC공채 7기)은 마포의 한 다방에서 첫 선을 보았는데 임채무가 첫눈에 반해 15분만에 프로포즈를 했다. 너무 급작스런 제안에 박인숙은 거절하고 말았다. 그런데 임채무는 집요했다. 반대하는 인숙의 부모를 3시간 동안 앉아 설득하고 또 그녀에게 거듭 청혼하여 마침내 허락을 받아냈다. 두달 뒤에 약혼을 했고 만난지 석달만인 3월15일에 마침내 웨딩마치를 했다. 부부는 슬하에 아들 임여문과 딸 임고운을 두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지는 못했던듯 하다. 탤런트 생활로 일이 많았고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낮술을 먹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여문은 아버지를 어려워했고 딸 고운은 아버지와 놀아본 기억이 별로 없어 서먹해 했다. 임채무가 경기도 장흥에 대규모 놀이동산을 짓는 것은 1989년이다. 그는 연기자 데뷔(1973년) 시절인 70년대에 장흥에서 사극을 많이 찍었다. 대사 한 마디 없는 단역을 위해 온종일 기다려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주변을 돌아보며 이곳에 가족들과 놀러와 즐길 놀이동산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꿈이 조금씩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그는 여유가 생기면 그 일대의 땅을 조금씩 사모았고 마침내 1만 평의 대지를 갖게 되었다. 그 땅 중에 3천평을 활용하여 놀이동산(두리랜드)을 지었다. 놀이동산은 대기업이 대개 운영하는 시설들이 많다. 서울 근교라면 에버랜드와 서울랜드와 경쟁해야할 판이었다. 그들과 싸워서 이겨내는 일은 버거웠다. 결국 많은 빚을 지게 되었지만, 그는 두리랜드를 팔지 않고 버텼다.(2006년 휴업을 했고 30억원을 투자해 재개관했으나 여전히 수천만원씩 매달 적자가 나는 상황이라고 지인은 전한다.)그의 꿈이었고 그의 삶의 의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곳엔 임채무가 직접 제작한 다리가 있고 아시아에서 제일 길다는 점플린이 있다.아내와 둘이서, 그리고 아이들 둘을 데리고 와서 '둘이둘이' 행복하게 놀고싶어 시작한 '두리랜드'는 그의 삶을 힘겹게 한 계륵이 되기도 했다. 아내는 가족과는 뒷전인 채 밖으로만 나도는 남편을 견디기 어려웠기에 결별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한다. 일에 임해서는 완벽주의자 임채무였지만 가족과의 관계는 왠지 성기고 공허했던 점이 있었다.아내의 죽음은 아마도 그것을 통감하게 했을 것이다. 뒤늦게 깨달은 사랑의 소중함. 도란도란 나눠야할 가족애가, 큰 놀이기구에 아내와 아이들을 태워 즐겁게 해주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임을 느꼈던 것 같다. 그의 노래 '천생연분'은 그것을 말해준다. 한편 임채무의 매력적인 저음은, 고교시절부터 연습과 훈련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동창 중에 가수 차중락의 동생이 있었는데 그에게 목소리가 좋다면서 가수를 해보라고 권유를 했고, 그때부터 열심히 발성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새벽마다 장충체육관에 나서서 발성을 연습했고 해병대에 가서도 결혼을 해서도 그 연습을 멈춘 적이 없었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디지털뉴스룸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