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 사회부 차장 jmryu@asiae.co.kr
지금 생각해도 눈물겨운 드라마였다. 1년 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아내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아내가 향한 곳은 동네 PC방이다. 동네에서 최고 속도를 자랑한다는 인터넷 접속 환경을 찾아 그 PC방을 찾았다. 당시 아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티라노킹' 구매가 목적이었다. 어느 인터넷 쇼핑몰에서 한정 판매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내를 비롯해 전국의 엄마 아빠들은 망설임 없이 '장난감 확보 전쟁'에 동참했다. 아내는 만반의 준비 끝에 참여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낙심도 잠시, 며칠 후 아내는 다시 전쟁에 뛰어들었다. 어느 대형마트에 티라노킹이 7대 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대형마트는 오전 10시 문을 열지만, 아내는 새벽 6시 어둠을 뚫고 현장으로 향했다. 평일 오전 시간이었지만, 건물 앞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모두의 목적은 하나, 티라노킹 확보였다. 장난감 판매 장소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은 1층 정문일까, 지하 주차장 쪽일까. 현장에 있는 이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각자 나름의 계산에 따라 출발선에 섰다. 오전 10시, 드디어 대형마트 셔터가 열렸다. "뛰어!" 누군가의 외침 이후 어른들의 전력질주 경쟁이 벌어졌다. 남성이 빠를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다. 티라노킹을 손에 넣으려는 엄마들의 절박한 마음은 남성의 운동 능력을 뛰어넘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숨을 헐떡이며 판매 장소에 도착한 아내, 4등이었다. 7등 밖으로 밀려난 이들은 아쉬움과 부러움의 표정으로 서 있었다. 며칠 후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아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에 나왔다. 거실에는 위풍당당 '티라노킹'이 있었다. 아들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으로 티라노킹을 집어 들었다. 엄마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졌다. 장난감 전쟁의 피로도 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며칠 후 반전이 기다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들은 3~4일 티라노킹만 갖고 놀더니 그새 싫증이 났는지 다른 장난감으로 눈길을 돌렸다. 티라노킹이 버림을 받다니…. 엄마의 눈물겨운 노력을 안다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들이 엄마의 사연을 어찌 알겠는가. 그저 산타 할아버지가 주고 간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지난해 충격은 엄마 아빠에게 '예방주사' 효과로 이어졌다. 올해도 장난감 전쟁에 참여했지만 나름 여유가 생겼다. 아이의 '기쁨 유효기간'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만큼 길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일까.류정민 사회부 차장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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