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X파일] 패터슨 여자친구, ‘이태원 살인’ 숨은 단서

패터슨 1997년 4월3일 사건 이후 ‘의문의 행적’…대법 판결문 '여자친구, 범행 내막 이미 짐작'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div class="break_mod">‘법조 X파일’은 흥미로운 내용의 법원 판결이나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뒷얘기 등을 해설기사나 취재후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입니다.
1997년 4월3일 오후 5시 서울 이태원의 한 건물.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당시 17세), 에드워드 건 리(당시 17세) 등 미국인 친구들이 건물 4층의 한 주점에서 술과 음료를 나눠먹었다. 이들 중 패터슨과 에드워드 등 일부는 배가 고파 건물 1층의 패스트푸드점(햄버거 전문)을 향했다. 햄버거를 나눠 먹던 이들 중 패터슨과 에드워드가 화장실로 향했다. 사건은 그곳에서 일어났다. 대학생 조중필(당시 22세)씨는 화장실에서 처음 본 사람에게 칼로 수차례 찔려 숨을 거뒀다. 현장에는 단 3명만이 있었다. 숨진 조중필씨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패터슨 그리고 에드워드.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이태원 살인사건’ 범인은 패터슨 또는 에드워드 둘 중 한 명이다. 검찰도 법원도 심지어 양 당사자도 그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누가 범인일까.

이태원살인사건 패터슨 / 사진=MBN 뉴스 캡처

범행에 사용된 칼은 패터슨이 갖고 있던 휴대용 칼(일명 잭나이프)로 칼날 길이는 9.5㎝다. 칼로 찌른 행위자는 누구일까. 결정적 단서는 “나는 지금 화장실에 가고 싶다. 따라 와라. 내가 무엇인가를 보여줄 것이다”라는 얘기다. 패터슨 또는 에드워드 둘 중 한 명이 이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언의 주체는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살인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그 말을 했는지, 목격자 간 증언이 엇갈린다. 화장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역시 증언은 엇갈린다. 패터슨과 에드워드는 상대방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목격자도 없고, 피해자인 조중필씨는 이미 숨졌다. 물론 화장실에 CCTV도 없다. 현장의 모습과 증언, 이후 행적 등을 종합해 범인이 누구인지 판단할 수밖에 없다. 검찰이 애초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 사람은 에드워드였다. 당시 에드워드는 키가 180cm, 패터슨은 172cm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체격이 큰 에드워드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결과적으로 에드워드는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에드워드의 살인 혐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패터슨이 범인일까. 대법원은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한 것일까. 패터슨은 미국으로 잠적한 지 16년 만에 송환됐다. 이제 법원의 판단을 통해 죄가 있는지가 결정될 것이다. 법원의 판단에 앞서 결과를 예측할 만한 단서가 있다. 바로 패터슨이 사건 이후 보여준 의문의 행적이다. 대법원이 에드워드의 살인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대법원 판결문에 담긴 패터슨의 그 날 행적은 이런 내용이었다. 패터슨은 1997년 4월3일 이태원 건물 4층(친구들이 모여 술과 음료를 나누던 곳) 업소의 화장실로 갔다. 패터슨은 자신의 피 묻은 셔츠를 친구 A씨가 벗어주는 셔츠와 갈아입었다. 또 A씨가 주는 검은 모자를 쓰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렇게 변장한 패터슨은 4층 업소에서 자신의 여자 친구인 B씨와 만났다. 패터슨과 여자 친구의 행동 그리고 발언은 이번 사건을 풀어주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다.

대법원. 사진=아시아경제DB

여자 친구는 울고 있었다. “패터슨이 그런 짓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 패터슨은 여자 친구에게 같이 가자(현장을 빠져나가자)고 했다. 하지만 여자 친구는 응하지 않았다. 패터슨에게 피 냄새가 난다면서 동행을 거절했다. 패터슨은 여자 친구에게 미 8군 영내의 호텔에서 만나자고 했다. 패터슨은 A씨 등과 함께 미 8군 영내로 들어갔다. A씨 등 패터슨 친구들은 미 8군 영내에서 패터슨의 피 묻은 셔츠를 불태웠다. 증거를 인멸한 셈이다. 패터슨은 친구와 피 묻은 바지를 바꿔 입었다. 패터슨은 이 사건에 사용됐던 칼을 도랑에 버렸다. 이후 패터슨은 미 8군 영내 호텔에서 여자 친구와 만났다. 여자 친구는 울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친구인 C씨가 “피해자가 죽은 것 같다”고 하자 패터슨은 양손으로 머리를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A씨가 누가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묻자 패터슨은 자기가 한국 남자의 몸을 칼로 찔렀다고 말했다. 다음날 다시 A씨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한국인이 쳐다보고 손을 휘둘러 그를 찔렀다. 그다음은 다 아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패터슨은 피 묻은 신발을 미 8군 영내 호텔 보관함에 숨겼고, 미군 범죄수사단에 체포됐다. 대법원은 1998년 4월 판결문에서 패터슨 여자 친구의 행동을 주목했다. “범행 후 (여자 친구인 B씨가) 스카이 하이 홀에서 패터슨이 그런 짓을 했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울었다는 것은 그녀가 이 사건 범행의 내막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패터슨의 여자 친구는 왜 “패터슨이 그런 짓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라는 말을 했을까. 패터슨은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범행의 내막을 털어놓은 것일까. 18년 전 벌어진 일이지만,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여러 증거가 필요하다. 패터슨 여자 친구의 발언과 행동도 그 중 하나다. 검찰은 증거의 조각들을 모아 그날의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 검찰도 절박한 입장이다. 다시 한 번 사건을 미궁 속에 빠뜨릴 수는 없다. 10월8일 패터슨을 둘러싼 새로운 재판이 시작될 예정이다. 1997년 4월3일 '이태원 살인사건' 진범은 누구일까. 그는 법의 단죄를 받게 될까. 아니면 다시 한 번 유유히 한국을 떠나게 될까.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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