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아름다운 퇴장

전필수 증권부장

중국 남북조시대 서진의 군주 걸복건귀는 후진과 전쟁에서 단 한 번의 패배로 수도를 포위당했다. 전세가 기울자 걸복건귀는 신하들에게 울며 말했다. "내가 재능이 없어 나라를 다스린 지 10여년, 지금 패해서 군사들은 흩어졌으니 적을 상대할 수 없다. 그대들은 투항해서 가족들을 지키도록 하라."신하들도 울며 "끝까지 폐하를 따르겠다"고 결사항전을 외쳤다. 하지만 걸복건귀는 "만약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지 않는다면 훗날 옛날의 대업을 회복해 다시 경들과 서로 만나고자 하니 지금 서로 따르겠다고 하는 일은 무익하다"며 신하들을 투항하게 했다. 이렇게 서진은 한차례 망했다. 그래도 걸복건귀는 따르는 이들이 많아 적국에서도 장수로 중용됐다. 그리고 나라를 잃은 지 10년이 되지 않아 다시 나라를 재건할 수 있었다. 워크아웃 중인 A기업 인수를 추진하던 B기업 사장은 분통을 터뜨렸다. 채권단과 노조가 매각에 동의하고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되는 상황에서 갑자기 A사 대주주 측이 '몽니'를 부리고 있어서다. A사의 대주주인 C씨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성장, 계열사 수십 곳을 거느린 중견그룹의 회장으로 주목을 받았었다. 지금은 채권단이 된 국책은행의 사외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리한 확장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주력 계열사들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C씨는 현금성 자산만 1000억원이 넘는 A사로부터 돈을 빼 계열사들을 지원하며 그룹의 회생을 도모했지만 결국 그룹은 공중분해됐다. A사도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신세가 됐다.이 와중에 업계 1위였던 A사는 7~8위까지 추락했다. 1200억원의 현금은 사라지고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1000명에 가까운 남은 직원들은 기업회생을 위해 급여 일부를 반납하면서까지 버티는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C씨는 자신의 친인척인 경영진을 통해 B사에 자신이 계열사 지원을 위해 A사로부터 빼 간 1000억원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고, 노조가 소송을 거는 것을 막아달라는 각서를 요구했다. B사가 이를 거부하자 C씨의 측근인 A사 경영진은 계약서 날인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수년째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A사 직원들은 기약 없는 고통분담을 이어가게 생겼다.모든 회사, 조직이 성공할 수는 없다. 실패도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실패가 자산이 되기 위해선 아름다운 퇴장도 필요하지 않을까.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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