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 한국 첫 여성 영화제작자이며 방송ㆍ출판계에서도 활동하며 각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유한 ‘문화계 여걸’ 전옥숙씨가 9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전옥숙. 1968년 경향신문 기사에 실린 사진이다.
고인은 1960년 영화평론지 ‘주간영화’를 발행하면서 영화계와 인연을 맺은 뒤 남편 홍의선씨와 함께 영화를 제작했다. 1963년 서울 답십리에 국내 최초 영화촬영소인 은세계영화제작소를 설립하고 영화 ‘부부 전쟁’ ‘그대 옆에 가련다’ 등을 내놓았다. 군 출신인 남편 홍씨는 1967년 영화신용조합 발족을 주도하고 조합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1984년 국내 최초의 외주제작사인 시네텔서울을 세워 ‘베스트셀러극장’ 등 TV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1991년 한국방송아카데미를 열어 방송 인력을 양성했다. 고인의 둘째 아들이 홍상수 감독이다. 홍 감독은 어머니와 친분이 있는 연극연출가 오태석의 권유에 따라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영화감독이 됐다. 고인은 대중에겐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내 정치ㆍ문화ㆍ예술계의 유력 인사였다. 술자리에 야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불러 나오게 할 정도로 친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일본에서 지낼 때 가끔 만나 식사를 했다. 고인이 주최한 송년회는 국내 각계를 망라한 그의 인맥이 드러나는 자리였다. 몇 명만 꼽으면 김지하, 이영희, 김근태, 한화갑, 손학규, 최시중, 김부겸, 원희룡, 김석원, 이애주, 윤흥길, 이영애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그를 ‘섬광처럼 자극을 주는 뮤즈’와 같은 인물로 평가했다. 남 전 장관은 한 언론매체에 쓴 글에서 고인의 주변에 김지하 시인, 이병주 소설가, 조용필, 민주화 운동의 대부 장일순 같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맴돈 것은 이 때문이리라고 회고한 바 있다. 고인은 일본통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ㆍ문화계가 그를 통해 연결됐다. 계간 ‘한일문예’를 발행해 한국 소설을 일보에 소개했다. 후지TV 한국지사장도 지냈다. 경상남도 통영 출신인 고인은 이화여자대학 국문과를 졸업했다. 가수 조용필의 노래 ‘서울, 서울, 서울’과 ‘생명’의 가사를 썼다. 장남은 홍영수 MSD 회장이고 오세정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사위다. 빈소는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이며 11일 오전 10시에 발인한다. (02)2030-7906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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