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 홍준표 다시 반전?…벼랑 끝 정치인생

법무부 장관 꿈꾸던 홍준표, 피의자로 檢 출석…구속영장 청구 여부가 첫번째 관전포인트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법무부 장관이라면 생각해보겠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입각’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그렇게 답하고는 했다. 홍 지사는 한나라당 대표와 원내대표, 국회의원, 광역단체장 등 다양한 경력이 있지만, 장관 경험은 없다. 장관 자리에 오를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홍 지사가 원했던 법무부 장관 자리는 그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홍 지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형님’ ‘아우’하는 사이다. 한때 친이명박계로 홍 지사를 분류하기도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독자 계보’다. 홍 지사가 법무부 장관을 희망했던 이유는 검찰 출신으로서 누구보다 ‘그 쪽 세계’를 잘 안다는 자신감도 영향을 줬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역량을 선보인다면 정치인의 마지막 꿈인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 유리하다는 점도 고려된 결과다.
홍 지사는 당내 기반이 있는 듯 없는 듯한 묘한 인물이다. 2007년 8월20일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를 선출할 때 미디어는 ‘이명박-박근혜’ 후보 맞대결에 온통 관심을 기울였지만, 또 다른 후보도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홍 지사고 다른 한 사람은 원희룡 제주도지사다. 홍 지사는 득표율 0.92%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기록했다. 그나마 여론조사에서 2.42%를 얻었고, 한나라당 당원·대의원 등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0.54%를 얻는데 그쳤다. 원희룡 지사가 얻은 득표율의 반토막 수준이다. 이쯤 되면 당내 기반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홍 지사가 대통령을 꿈꾼다면 ‘황당한 꿈’이라고 봐야할까. 흥미로운 대목은 2007년 대선후보 당내 경선에서 0.92%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낸 홍 지사가 불과 1년 후인 2008년 5월22일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단독 입후보해 여당의 원내사령탑이 됐다는 점이다. 당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광우병 정국’의 후폭풍으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시기였다. 홍 지사는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추대되며 ‘구원투수’ 역할을 부여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호형호제(呼兄呼弟)’ 관계라는 점에서 당청 관계도 원만하게 풀어갈 것이란 기대가 나왔다. 홍 지사가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부임했을 때 가장 반긴 쪽은 친이명박계다. 그러나 홍 지사가 2011년 7월4일 한나라당 대표로 당선됐을 때는 친박근혜계가 가장 반겼다. 당시 언론은 ‘친이명박계의 몰락’이라는 기사 제목을 뽑기도 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홍 지사는 당시 친박근혜계 지원을 받아 선거에 임했고, 선거인단과 여론조사를 포함해 25.5%의 지지를 얻어 경쟁 후보들을 압도했다. 선거인단 득표율도 25.6%로 1위를 차지했다. 2007년 8월 0.54%의 선거인단 득표율과 비교할 때 급상승한 결과다. 2011년 7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이 주목되는 이유는 홍 지사의 ‘정치생명’을 위협하는 ‘성완종 리스트’ 의혹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홍 지사는 자신의 선거를 돕기도 했던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으로부터 2011년 6월 1억원의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홍 지사는 4년 전 여당의 당 대표를 맡으며 탄탄대로를 기대했겠지만, 당시 선거 때문에 정치인생을 끝낼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했다. 홍 지사는 8일 오전 10시 서울고등검찰청에 출석했다. 검정색 승용차를 통해 현장에 도착한 그는 분홍색 넥타이와 양복 차림이었다. 수백명의 취재진이 그의 출석을 기다렸고, 도착하자마자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홍 지사는 애써 미소를 보이며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홍 지사는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된 점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공개 답변은 1분 남짓이었다. 윤승모씨를 회유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잠시 포즈를 취한 뒤 서울고검 조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찰은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의 뜻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홍 지사는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8명 중 처음으로 사법 처리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물론 경남도지사 자리도 위협받게 된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와 0.92%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지만, 대통령을 향한 꿈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이번 검찰 결과에 따라 오래된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검찰은 단 한 번의 조사를 통해 ‘기소’를 이끈다는 방침이다. 홍 지사는 법리적인 방어벽을 세우며 이에 맞서고 있다. 첫 번째 고비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여부가 될 전망이다.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라는 강수를 둘 경우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관심거리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의미는 홍 지사를 둘러싼 혐의 입증에 대한 자신감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홍 지사 측의 증거인멸 의혹을 입증할 수 있다는 판단이 담겨 있다. 하지만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법원이 기각한다면 검찰 수사는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운명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를 탔던 홍 지사와 조직의 자존심을 건 검찰의 치열한 법리다툼은 이제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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