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돼지의 단식

나는 돼지다. 영어 이름은 피그(pig), 한자는 돈(豚) 또는 해(亥). 멧돼지과에 속하는 데 잡식성이어서 한때는 인류와 먹이를 다투는 라이벌이었다. 농경시대 이후 사람들 손에 길들어졌는데 그 역사가 48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듣자하니, 지난해 아이큐 7인 닭이 이 지면()을 통해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던 데 내 아이큐는 무려 70으로 개(아이큐 60)만도 못한 사람보다 낫다. 그러니 나의 족적(이라고 쓰고 족발이라고 읽는다)을 이곳에 족족히 남기는 것을, 인간들이여 기꺼이 환영해주길. '돼지는 더럽다'는 오해부터 풀어야겠다. 우리는 땀샘이 별로 없어 체온을 유지하려면 수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들이 좁은 우리에 가둬놓고 방치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배설물을 뒤집어 쓰는 것이다. 우리에 가둬놓으면 개나 소, 말, 심지어 인간들도 더러워지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정말 더럽다면 패리스 힐튼 같은 세계적인 미녀가 우리를 애완용으로 키우겠는가. 힐튼의 품에 안긴 돼지를 개나 소, 말, 게다가 일부 인간들까지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이슬람교ㆍ유대교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가 '더러워서'라는 데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근거는 없다. 반면 한국ㆍ중국ㆍ일본에서는 인기가 높다. 한국인들의 육류 소비량 1위는 단연 돼지고기다. 중국에서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최고의 고기'로 환영받는다. 일본의 장수마을인 오키나와의 삶은 돼지고기 등심은 건강식으로 불티나게 팔린다. 이처럼 인류의 일용한 양식으로 1년 동안 희생되는 우리 동료는 세계적으로 130억마리. 그뿐인가. 놀랍게도 우리의 내장은 인간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해 해부용으로, 장기 이식 연구용으로 기꺼이 이 한 몸 바친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인간들이 있으니 족발이 분연히 떨쳐 일어날 지경이다. 세월호 참사의 문제적 인물인 유대균씨가 도피 중 닭을 주문했네, 마네로 시끄러웠던 언론이 또다시 사고를 쳤다. 불법 정치 자금을 폭로하면서 목숨을 끊은 성완종씨가 회식 때 삼겹살을 잘 먹었니 어쩌니 하는 뉴스를 '특종'이랍시고 보도했으니 내 낯이 다 뜨겁다. 돼지허파로 똥볼을 차도 유분수지, 곱창 옆구리 터지는 소리가 가관이다. 과연 인간들도 구제역에 걸리나보다. 이 판국에 대통령은 사과도 아닌 유감으로 유체이탈식 화법을 선사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는 또다시 잊혀지고…. 돼지우리보다 나을 게 없는 인간사, 이런저런 꿀꿀한 소식에 입맛을 잃는다. 허리춤 부여잡고 단식이라도 하고픈 심정이다.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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