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언론이 문제다

박성호 금융부장

"도대체 그렇게 인물이 없나. 왜 나오는 사람마다 다 만신창이가 되는거야." 설에 가족들이 모여 나누는 대화 주제 중 금기라는 정치 이야기가 나왔다. 그것도 평상시 정치뉴스에 관심도 보이지 않던 누나가 이완구 총리의 자격 시비를 화두로 꺼냈다. 아마도 정치경제부장이 된 막내의 의견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정치 이야기 하지 말자. 골치 아파." 미간에 주름을 잡자 누나가 잠시 말을 잇지 않았지만 못내 서운한 표정이다. "개발시대를 산 사람치고 완벽하게 깨끗한 사람 있을까 싶어." 마음에 걸려 한마디 했다. 옆에 앉아 있던 큰형이 본격적으로 거들 태세다. "맞아, 나 같이 없는 사람도 총리후보 되면 욕 엄청 먹을거야." 그리고는 지나가는 소리인양 툭 내뱉는다. "문제는 언론의 태도가 오락가락하는 거야. 일관성도 없이." 이쯤 되면 조용히 주방에 가서 녹두전이나 한 점 집어먹고 입 닫고 있는 게 상책이다. '언론이 문제다'라는 인식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특히 일이 제대로 풀리지 못했을 때 진정성을 가지게 되는 듯싶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부단히도 언론을 거론했다. 대표적으로 광우병 괴담을 언급한 장에서 그는 "2011년 9월2일 대법원 판결에서도 나왔듯이 이 프로그램의 주요 주장에 문제가 있었다"고 썼다. 광우병 괴담으로 국정지지율이 20%대 초반으로 떨어져 국정동력이 떨어졌고 1기 참모진의 퇴진에 가슴 아파했다. '날벼락 같은 세계금융위기'편에서는 파이낸셜타임스 등 해외 언론의 괴담 수준이라는 기사를 지적했다.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마저도 국내외 언론의 부정적 보도로 인해 통제불능으로 치닫고 있었다고 책임을 돌렸다. 경제부문만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을 방문한 북한 특사를 만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당시 '청와대가 북한 조문단을 지나치게 박대한다'는 기사가 났다며 서운했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본인의 시각에서 정확하다고 판단한 보도를 인용하기도 했다. 특히 한미관계 복원, 중국 쓰촨성 대지진 현장 방문, 녹색성장 등에서 국내외 기사는 그의 공적에 리본을 달아줬다.  회고록만 보면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치적기사를 공정한 기사로, 비판보도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일방적이고 부정확한 기사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언론의 역할에 상당한 회의적 시각을 유지했다. 미완의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서 그는 참여민주주의를 논하며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니 사실과 이해관계를 국민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죠.(중략) 제 생각에 정치 지도자라면 언론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나라에서 진짜 지도자입니다"라고 썼다. '감히 언론에 맞서다니' '언론권력의 무책임성과 신뢰의 붕괴' '세계의 정치와 언론이 춤을 춘다' 등 이 전 대통령보다 더 날선 비판을 가했다.  언론인으로서 언론을 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날로 치열해지는 온라인뉴스 속보 경쟁, 디지털시대에 한 클릭이라도 더 늘리기 위한 제목들, 보수와 진보를 균형 있게 바라보지 못하는 논조 등 나열하자면 지면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정치지도자들이, 그것도 행정수반을 거친 전임 대통령이 언론을 마냥 탓하고 있는 건 볼썽사납다. 신기한 건 두 전직 대통령 모두 언론에서 미운털을 뺄 해법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전 대통령은 광우병 사태 이후 국정 운영에서 국민과의 소통이 주요 원칙으로 자리잡게 됐고 그것이 교훈이라고 썼다. '언론은 흉기'라고 단정한 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언론개혁을 할 때 전략적으로 용의주도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조금 더 요령을 가지고 유연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가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언론은 공기(空氣)와 같다. 황사가 오면 유연한 소통이라는 공기청정기를 가동해야지 입벌리고 먼지 탓 해봐야 본인 몸만 해친다. 박성호 정치경제부장 vicman1203@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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