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는 최근 마라톤과 관련한 흥미로운 외국 자료를 우연히 보게 됐다. 이 자료에는 1921년 이후 남자부, 1980년 이후 여자부 마라톤의 연도별 최고 기록이 정리돼 있었다. 연도별 최고 기록이기 때문에 당시 세계 최고 기록보다 뒤질 수도 있다. 따라서 ‘역주행’도 한다. 예를 들어 2012년 시즌 최고 기록은 케냐의 지오프리 무타이가 세운 2시간4분15초인데 2011년 시즌 최고 기록은 케냐의 패트릭 마카우 무쇼키가 수립한 2시간3분38초다. 자료를 훑어 내려가다 보니 1924년 일본의 가나구리 시조가 그해 최고 기록인 2시간36분10초를 세웠다는 내용이 먼저 눈에 띄었다. 이어 1933년 구스노키 고조(2시간31분10초) 등 세 명의 일본인 선수가 나타나고 1935년에 이르러 드디어 손기정 선생이 등장한다. 그해 손기정 선생은 세계 마라톤 사상 처음으로 2시간30분의 벽을 깨고 2시간26분14초의 최고 기록을 수립했다. 이어 1936년에도 2시간28분32초의 그해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 자료에는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가 손기정 선생 영문 이름(Sohn Kee-Jung) 앞에 걸려 있다. 'Kitei Son'이 아니다. 당시 상황을 좀 더 살펴보자. 1935년 11월 3일 도쿄에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파견 일본 대표 2차 선발전을 겸한 제8회 메이지신궁경기대회 마라톤 경기가 열렸다. 손기정 선생은 일본의 스즈키, 나카무라, 사가라, 구스노키 등과 함께 메이지신궁경기장을 출발했다. 반환점을 돌 때까지 손기정 선생과 나카무라가 선두 다툼을 벌였다.반환점을 돌자마자 나카무라를 앞선 손기정 선생은 후반에 들어서자 무서운 스피드를 내기 시작했고 2위 나카무라를 2분 이상 거리로 떼어 놓은 손기정 선생은 독주를 계속해 4만 관중의 환호 속에 메이지신궁경기장에 선두로 들어가 우승했다. 2시간26분42초의 공인 세계 최고 기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고 4월 일본의 이케나가가 수립한 세계 최고 기록 2시간26분44초를 2초 단축한 것이었다. 외국 자료에 있는 2시간26분14초와 28초의 차이가 난다. 손기정 선생은 이미 서울에서 여러 차례 세계 최고 기록을 마크했으나 일본육상경기연맹(JAAF)은 그때마다 자기네가 공인한 코스가 아니라는 이유로 손기정 선생의 세계 최고 기록을 인정하지 않았다. 손기정 선생은 1934년 4월 22일 제2회 풀마라톤대회(이 무렵에는 10마일 15마일 등 장거리 경기에 모두 마라톤 대회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42.195km 풀코스를 달리는 경기에는 풀마라톤대회라는 별도의 명칭을 붙였다)에서 2시간24분51초, 그리고 1935년 5월 18일 제 3회 풀마라톤대회에서 2시간24분28초의 엄청난 세계 최고 기록을 각각 세웠다. 그러나 한국인이 조직한 조선체육회가 주최한 풀마라톤대회는 JAAF이 공인한 코스가 아니라는 이유로 손기정의 기록은 공인되지 않았다. 글쓴이가 확인한 자료에도 1934년에는 일본의 시아쿠 다마오가 작성한 2시간32분56초가 그해 최고 기록으로 돼 있다. 이 자료에 있는 1935년 관련 내용은 손기정 선생이 그해 3월 21일 도쿄에서 2시간26분14초의 시즌 최고 기록을 수립했다고 돼 있는데 자료의 신빙성이 좀 떨어진다. 손기정 선생은 1935년 4월 27일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세운 경기 단체인 조선육상경기협회가 주최한 제1회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2시간25분14초의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조선육상경기협회는 서울에서 치르는 마라톤이 공인되지 않은 짧은 코스라는 JAAF의 주장이 마땅치 않아 이 대회에서는 정규 코스 길이 42.195km보다 520m를 더 잡았다. 정규 코스보다 520m나 더 긴 코스에서 세운 세계 최고 기록인데도 JAAF는 공인하지 않았다.3월에 도쿄에서 풀코스를 뛰고, 한 달 뒤인 4월에 서울에서 다시 풀코스를 달린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무튼 일본체육협회가 11월 도쿄에서 개최한 올림픽 파견 선발전 겸 메이지신궁대회의 공인 코스에서 손기정 선생이 세운 기록을 공인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비로소 손기정 선생의 세계 최고 기록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국내 자료로 볼 때 1935년의 시즌 최고 기록은 2시간26분44초가 맞는 것 같다. 제8회 메이지신궁경기대회 마라톤에서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우면서 손기정 선생의 베를린 올림픽 참가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생은 2시간29분19초2의 올림픽 최고 기록으로 우승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30분의 벽을 돌파한 선수는 손기정 선생이 처음이다. 그리고 외국자료에 나와 있는 1936년 최고기록과 작성일자도 약간의 의문점이 있다. 자료에는 그해 4월 18일 도쿄에서 2시간28분32초의 시즌 최고 기록을 세운 것으로 돼 있는데 5월 21일 열린 베를린 올림픽 파견 일본 대표 최종 선발전에서는 남승룡이 1위, 손기정이 2위를 각각 차지했다.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 역시 한 달 간격으로 풀코스를 뛴 것이어서 자료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1934년부터 1936년 사이에 손기정 선생이 세계 최고 기록을 잇따라 경신하면서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로 이름을 휘날린 사실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자료에는 또 한 번 태극기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름이 좀 이상했다. ‘Toyu Ko’다. 고도유? 이렇게 읽어도 한국 이름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색한데 이름 앞에 태극기가 선명하다. Toyu Ko는 1939년 11월 3일 도쿄에서 2시간31분26초의 시즌 최고 기록을 세운 것으로 돼 있다. 다음 회에서 'Toyu Ko'를 찾아 나선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스포츠레저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