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이민찬 기자]평생의 반려자를 떠나보낸 김종필 전 국무총리(89)는 거동이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조문객 맞이에 분주했다. 그는 향년 86세로 지난 21일 저녁 별세한 아내에 대한 예를 다했다.문상객을 맞은 김 전 총리는 64년간 고락을 함께하며 해로한 아내 고(故) 박영옥 여사에게 애뜻한 마음을 표했다. 김 전 총리는 "(박 여사가) 숨을 거둘 때 곧 따라갈테니 외로워 말고 편히 쉬라고 말했다"고 조문객들의 위로에 답했다.올해 우리 나이로 구순(九旬)인 김 전 총리는 박 여사가 척추협착증과 요도암으로 지난해 가을 입원한 이후 매일 병원에 들러 간호해 왔다. 본인도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팔과 다리가 불편한 상태였지만 휠체어를 탄 채 부인 곁을 지키다 매일 오후 9시가 넘어 귀가할 정도였다. 김 전 총리는 64년 전 아내에게 결혼선물로 주었던 금반지로 목걸이를 만들어 임종 직전 아내에게 걸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휠체어에 탄 채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입원한 부인 고(故) 박영옥 여사를 간병하는 모습. 출처=정진석 전 의원 페이스북
김 전 총리와 박 여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소개로 1951년 2월 결혼해 올해로 결혼 64주년을 맞았다. 고인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셋째 형 박상희씨의 딸이다. 박상희씨는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으로 일제강점기였던 1940년대 여운형이 결성한 좌익단체인 건국동맹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대구 10.1사건으로 경상북도 일대에 시위가 확산되자 10월1일 당시 경찰관과 시위대를 중재하던 중 경찰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박 전 대통령은 셋째 형을 멘토로 삼았던 것으로 전해진다.김 전 총리는 "당시 국수를 좋아하던 박정희 소령의 관사에서 국수를 먹는데 못 보던 여자가 왔다 갔다 했다"며 고인과의 첫 만남을 회고했다. 전쟁이 터진 후 말라리아를 앓던 고인에게 김 전 총리가 의사를 구해준 것을 계기로 더 가까워져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1ㆍ4 후퇴 직후 대구에서 결혼했다. 김 전총리는 당시를 "중공군이 오산까지 내려왔을 때"라고 기억했다. 두 사람을 맺어준 박 전 대통령은 전쟁 통에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황소 한 마리를 결혼선물로 보냈다. 이후 고인은 김 전 총리가 50년 넘게 정치생활을 하는 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 내조'를 했었다. 생전 박여사는 남편인 김 전 총리가 '나는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산 멍텅구리'라고 하자 '그런 사람이 어디 당신뿐이겠느냐'며 면박을 하기도 했다. 슬하에 딸 예리(64)씨와 아들 진(54)씨를 뒀다. 김 전 총리는 지난해 자신과 아내가 묻힐 장지를 직접 마련해 뒀다. 주변 사람들은 64년 순애보를 사후에도 이어가려 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총리는 "우리 선산은 10평인데 그래서 형제들이 나란히 있다"며 "이런 돌연사를 맞이해도 당황하지 않기 위해 작년에 마련해놨다"고 말했다. 또 김 전 총리는 자신과 부인을 위한 비문을 직접 만들고 "수다한 물음에는 소이부답(笑而不答ㆍ웃을 뿐 답을 하지 않는다) 하던 자 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영세반려(永世伴侶ㆍ오랜 세월 짝이된 동무)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라는 문구를 새긴 것으로 전해졌다. 발인은 오는 25일 오전 6시30분. 장지는 충남 부여군 반교리 가족묘원이다.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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