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 습격] ‘들키다’라는 말(261)

1. 몰래 먹은 마음, 혹은 감추고 싶은 행위, 혹은 도둑질처럼 가만히 진행된 일, 혹은 무사한 듯 보였던 거짓말, 속였던 감정. 그런 것들이 뜻밖에 드러났을 때 우린 ‘들켰다’라고 말한다. 들키는 일은 인식의 문제이므로 감각의 모든 것에서 가능하다. 눈에 들킬 수도 있고 냄새로 들킬 수도 있고 소리로 들킬 수도 있다. 일의 맥락에서 들킬 수도 있고 표정이나 뉘앙스에서 들킬 수도 있다. 글에서 들킬 수도 있고 그림과 음악에서 들킬 수도 있다. 들키는 사람은 객체이다. 들키는 일은 주체가 따로 있다. 나의 인식이 아니라 상대의 인식에 비쳐지는 일이다. 하지만 타인의 인식이 자아의 인식을 곧 간섭하게 된다. 들키는 일은 타인의 인식과 감관에 붙들린 것이지만, 들킨 주체를 당황하게 하는 무언의 질타가 되기 쉽다. 들키는 일에는, 일정한 긴장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들키지 않고자 조심하는 쪽이, 상황의 차질을 수습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들키는 일에도, 치명적인 것이 있고 사소한 것이 있으니 그 긴장도가 같을 순 없다. 차라리 들키고 싶은 마음이 숨어있었던 경우도 있다.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은 독자에게 들키려는 욕망을 품고 있다. 무심히 혹은 캐주얼하게 진행되는 연극은, 관객에게 들키고 있음을 꾸준히 의식한다. 외면하는 일 또한 의식하는 일의 일종이다. 어두운 객석에서 울고있는 관객은, 연극의 무엇에게 자신의 내면을 들킨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온 방식은, 들키지 않고 싶었던 것들을 용케 들키지 않아온, 다행들의 연속이다. 그러다가 재수없이 몇 개는 들켜 문제를 구기고 수고와 망신을 감수하는 일이 끼어있기도 하다. 우리가 가끔 운명론자가 되는 것은, 들키지 않은 생이 들킨 생에게 주는 조언이기도 하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들킨 것이 문제라며, 들키지 않는 비결을 자랑스레 말해주기도 한다. 무엇이 어리석은 일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사실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자신은 들키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으나, 세상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고 속으로 조롱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자신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들키지 않은 죄들에 관한 명상을 체계적으로 진행한 것이 종교이다. 신에게 모든 것을 들키지 않는 인간은 없다. 인간의 꾀와 요행은 인간에게 들키지 않는 지혜와 솜씨일 뿐이다. 하늘에게 들키는 문제는, 이땅의 유학에서도 논의의 핵심이었다. 인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노하우와 요행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하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원천적인 허물을 제거하거나 그 허물을 개방해야 한다. 한번 들킨 것은 다시 들킬 수 없다. 들키지 않은 것은, 들키지 않기 위하여 영원히 파수를 세워야 한다. 허물을 씻는 일과 파수를 세우는 일. 그 비용을 비교해보는 일은 유익한 일이다. ‘들키다’에서 ‘들’은 ‘들다’에서 나온 것이다. 들다는 입(入)을 의미할 수도 있고, 거(擧)를 의미할 수도 있다. 들어가다(혹은 들어오다)에서 나온 것이라면, 들어가는 과정에서 발각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의 ‘들다’는 경계지점을 지나는 행동이다. 건너가서는 안되는 그 문지방을 넘어설 때, 무엇인가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이것이 들키는 일이다. 들어올리다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것은 목표와 행위의 높이차이를 함의한다. 낮게 지나가야 하는 통로에서, 제대로 몸을 숙이지 못해 중간에서 걸린 것이다. 요컨대 행위가 목표보다 들뜬 상태이기에 들키고 마는 것이다. ‘들’ 뒤에 있는 ‘키다’는 무엇일까. 출입을 ‘들다나다’로 표현할 때. 들어가다가 문제가 생긴 것은 들키다이고, 나가고싶은 마음이 툭툭 치받는 것은 내키다이다. 두 말은 들어가고 싶은 욕망과 나가고 싶은 욕망을 말하고 있긴 하지만, 그 정황은 조금 다르다. 들키는 것은 이미 들어가는 일에 실패한 것이고, 내키는 것은 아직 나가지 않은 가운데 마음이 동하고 있는 상태이다. ‘들키다’의 ‘키다’는 그 계열어를 찾기 어렵다. 다만, ‘키’라고 발음할 때 조성되는 음성적 긴장이나 탄식같은 것이 기묘하게 말의 의미에 간섭한다. ‘들’까지는 좋았는데 ‘키’에 턱 걸리는 것이다. 들키는 일은, 목덜미를 붙들린 토끼의 버둥거림을 떠오르게 한다. 하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군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에게 들키는 것을 깊이 부끄러워하는 영혼이라면, 귀한 사람이라 할 만하다. 타인에게 들키지 않았다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에게 제대로 들킨 사람. 문제는 허물이 아니라 허물의 처리 방식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2.내 몰래 뻗은 발이마음을 들키다내 몰래 뻗은 손이 닿은 곳에두근거리는 생이 피멍처럼 뭉쳐져 있다곤두선 것의끝이 늘 저리다뱀처럼 컴컴하게 기어가는제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던 낫제 목이 반쯤 떨어지고 낫의 목이 반쯤 헐렁해져그쯤에서 멈춘 후회는두 마리 개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하느님을 바라본다하느님인들 어쩌겠는가구름 아래로 새나온 발가락을 들키고혹은 꿀꺽 삼킨 거위침을 들키고누군가 뱉어놓은 가래침은 왜 더러운가제목이 없는환부가바람에 마르는 풍경들키지 않으면 괜찮을 뻔 했던죄의지하계단고개 흔들다 이런딸꾹질을 들키다/빈섬.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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