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온 70년, 달려갈 30년…진정한 광복 '100년의 기족'을 꿈꾸며
광복의 기쁨에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는 짐작건대 '해방둥이 세대'일 가능성이 높다. 어린 나이에 6.25 전쟁으로 피난길에 올라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을 보낸 덕수는 청년이 되어서는 독일 광산으로, 또 베트남전으로 끌려나간다. 지금은 70대 노인이 된 그는 지금 외국인노동자들이 그 옛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낯선 우리 땅으로 건너와 살아가는 모습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 아마도 이 70년의 세월을 표현하는 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보다 더 어울리는 말도 없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불안과 희망의 교차점에서 1945년과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현재를 비교해 본다. ◆ 1945년, 치욕의 일제식민통치에서 해방...꿈에 그리던 광복 '그 때 그 얼굴들 / 그 얼굴들은 기쁨이요 흥분이었다 / 그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요 보람이었다 / 가슴에는 희망이요, 천한 욕심은 없었다 / 누구나 정답고 믿음직스러웠다 / 누구의 손이나 잡고 싶었다 / 얼었던 심장이 녹고 막혔던 혈관이 뚫리는 것 같았다 /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 모두 다 '나'가 아니고 '우리'였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게 되자 피천득 선생은 '1945년 8월15일'이라는 산문시를 써서 감출 수 없는 기쁨을 이같이 표현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국제정세 속에서 조국 광복이 그렇게 찾아오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민족의 한과 고통을 위로해주는 노래가 인기를 끌었던 것도 이 같은 상황을 말해 준다. 가수 백년설이 부른 '나그네 설움'과 '번지없는 주막' 등의 대중가요는 일제강점기 암울한 조국에 대한 민족의 울분을 잘 묘사하고 있다. 특히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고였네"라는 가사의 '나그네 설움'은 1940년 당시 10만장 이상의 음반이 팔리면서 대히트를 쳤다. 식민지 치하에서는 모두가 나그네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민족 독립의 오랜 염원이 이뤄지자 대중들은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1947년에 나온 현인의 '신라의 달밤'과 '럭키 서울'은 해방을 맞은 뒤의 기쁨과 낙관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다. 당시 소련 영사관 부영사의 아내로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던 파냐 이사악꼬 브나샤브쉬나가 쓴 책 '1945년 남한에서'에서도 우리 민족이 느꼈던 광복 후의 벅찬 감동과 환희를 확인할 수 있다. "8월 15일. 서울은 마치 쥐죽은 듯했다. 물론 주민들은 일본의 항복을 알고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그냥 기다렸다. 조심스러운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그런데 그 바로 다음날 모든 것이 바뀌었다. 거세고 억제할 수 없는 행복의 물결. 그 물결은 그대로 시내와 온 나라를 덮었다."
이산가족 상봉
◆ 광복과 함께 시작된 또 다른 고통, 분단 희망의 빛을 되찾은 '광복'의 기대감과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광복 70년은 분단 70년을 의미하기도 한다. 분단이 굳어지는 데 따른 새로운 불안감과 혼란이 다시 덮쳤다.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릿길/ 꿈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탄(嘆)한다"라는 노래 '가거라 38선'은 분단에 대한 한탄을 절절하게 담아 후에 이승만 정부에서는 금지곡 조치까지 받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이해관계는 갈수록 복잡해졌고, 해방 정국의 혼란 속에서 민중들 사이에선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게 속지 말자. 일본이 일어나고 중국놈들 몰려온다. 조선 사람 조심하자"라는 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정도로 불안감은 커졌다. 해방 후 신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과 달리 일제 식민통치의 잔재를 없애는 일은 더디게만 진행됐고, 서민들의 생활고는 여전했다. 1946년 채만식이 쓴 소설 '논 이야기'에서는 이 무렵 농민들의 비애를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들이 토지와 재산을 두고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은 주인공 한 생원은 자신의 땅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뜨지만 결국 땅을 되찾지 못하자 절망에 빠진다. "난 오늘부터 도루 나라 없는 백성이네. 제길 36년도 나라없이 살아왔을려드냐. 독립됐다구 했을 제, 내 만세 안 부르기 잘했지"라는 대목에서는 당시 해방이 되어도 달라진 게 없는 농민들의 생활상을 짐작해볼 수 있다. 1945년이라는 한 해 동안 우리 민족은 일제 치하 말기의 고통과 광복의 기쁨, 분단의 아픔을 차례로 겪어야 했다.
지난 3월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추모의식 및 기자회견 모습.
◆ 그 이후로 70년, 경제적 풍요로움 뒤에 드리운 불안한 그림자 그 이후로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산업화 과정을 거쳐 세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게 됐다. 2013년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세계 경제규모 순위에서는 14위를 차지했다. 광복 이후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유일한 나라로, 한국이 보여준 압축 성 장은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전쟁 직후인 1953년 67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60년 만인 2013년에는 무려 394배 늘어난 2만6205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풍요로움 뒤에는 부작용도 크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0년 넘게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행복하지 못하다. UN의 2013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도 한국은 이혼율과 저출산율 1위, 근로시간 2위를 차지했으며, 행복지수는 27위로 하위권을 기록했다.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송파 세모녀 사건과 같이 벼랑 끝에 몰린 빈곤층은 더욱 늘었다. 우리 사회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높은 교육열은 우리 사회를 대학진학률 70%의 고학력 사회로 만들었지만, 청년들은 취업난에 내몰렸다.
12월19일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을 결정한 가운데 통합진보당 당사의 문이 닫혀 있다.
또 한 가지의 우려는 좌우익이 극한으로 대립했던 해방정국의 무질서와 혼돈이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재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은 여전한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관계개선 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이념논쟁은 건전한 경쟁이 아닌 역사전쟁으로, 혹은 소모적인 색깔론으로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최근 헌법재판소에 의한 통합진보당의 해산으로 이념논쟁 양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1945년 10월23일 전조선신문기자대회에서 채택된 선언문에서는 "엄정중립이라는 기회주의적 이념이 적어도 이러한 전 민족적 격동기에 있어서 존재할 수 없음을 우리는 확인한다"라며 중간이나 중도를 전혀 허용치 않음을 명확하게 선언했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편가르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 다시 뛰는 30년, 통일 한국으로 나아가 2045년은 광복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다시 30년을 뛰어서 맞게 되는 2045년은 지난 70년의 명암(明暗)을 어떻게 계승하고 또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양극화, 복지, 저출산 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더미다. 이념과 계층 간의 갈등을 없애고 화합과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통일'도 고려해야 할 큰 변수다. 통일준비위원회에서는 통일한국이 되면 2050년 1인당 국내 총생산이 7만달러에 달하고,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2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광복 100년'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준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카이스트 미래전략연구센터에서는 2045년 한국 사회가 동반성장과 사회통합을 등한시하고 재벌 중심 성장책에만 올인했을 경우 "영세공장과 건설현장은 전부 외국인 노동자로 채워지고, 중산층과 사회안전망은 완전히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들이 제시한 6개 해결 과제는 저출산 및 고령화, 사회통합 및 갈등 해결, 평화와 국제정치, 지속적인 성장과 번영, 지속가능한 민주복지국가, 에너지와 환경문제다. 이광형 카이스트 미래전략연구센터장은 "우리 현실은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것이 없을 정도로 어둡다. 다음 세대에 제대로 물려주기 위해서는 진실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고 비전과 전략을 고민할 때"라고 말한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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