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김광현은 도전을 미뤘을 뿐이다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무산됐다. SK 구단은 12일 "김광현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계약 협상이 결렬됐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9월 28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대만과의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 당시 등판한 김광현의 모습.[사진=김현민 기자]

김광현은 장태영, 임신근, 이선희, 구대성 등의 계보를 잇는 한국 야구 최고의 왼손 투수 가운데 한 명이다. 추진했던 메이저리그 진출은 일단 실패했다. 지난 13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입단 협상이 결렬됐다. '시속 90마일(약 145㎞) 이상의 빠른 공을 던지는 왼손 투수는 지옥에 가서라도 데려온다'는 메이저리그 속설이 무색한 결과다. 미국 야구는 오랜 기간 일본 야구를 마이너리그 트리플A로 평가했다. 이런 인식이 있었기에 오 사다하루가 작성한 개인 통산 868홈런을 철저히 무시하는 등 일본 야구를 얕잡아 봤다. 그런데 올해 다시 열린 미·일 올스타전에서 그들은 팀 노히트노런 패배의 수모를 당했다. 세계선수권대회나 다름없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는 일본이 두 차례 우승(2006년 2009년)과 한 차례 3위(2013년)를 하는 동안 달랑 한 차례 4위(2009년)를 했다.여기에 마쓰자카 다이스케, 다르빗슈 유가 5000만 달러가 넘는 포스팅 금액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등 일본인 선수들의 몸값이 치솟자 미국은 지난해 다나카 마사히로의 포스팅을 앞두고 부랴부랴 포스팅 금액 상한선(2천만 달러)을 뒀다. 야구 본고장의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다나카의 포스팅을 앞두고는 입찰액이 1억 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설이 돌기도 했다. 그렇다면 미국 야구는 한국 야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프로야구 초창기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한국 야구 수준을 마이너리그 두 번째 등급인 더블A 정도로 평가했다. 좀 후한 평가를 한 이는 트리플A와 더블A의 중간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프로야구 초창기 최고 스타였던 박철순은 마이너리그 더블A에서 활동하다 트리플 A 승격을 앞두고 OB 베어스 창단 멤버로 합류했다. 이 사실이 그와 같은 평가의 배경이 됐을 수도 있다. 프로 출범 이후 첫 방한 경기를 가진 미국 프로 구단인 시카고 컵스는 은퇴한 어니 뱅크스를 간판으로 내세우고 트리플A와 더블A 선수들로 팀을 꾸렸다. 한국 야구 수준을 딱 그렇게 본 것이다.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인식은 3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박찬호와 류현진의 성공 사례가 있지만 이는 매우 특별하고 예외적인 사례로 치부하고 있는 인상이다.

메이저리그 진출이 불발된 김광현[사진=김현민 기자]

일본 야구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건 1960년대의 일이니 꽤 오래됐다. 1964년 난카이 호크스(소프트뱅크 호크스 전신)는 유망주 세 명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이 가운데 한 명인 무라카미 마사노리는 샌프란시스코 산하 싱글A 구단인 프레즈노 자이언츠가 속한 캘리포니아 리그에서 '올해의 신인'으로 뽑혔고 그의 잠재력을 인정한 자이언츠 구단은 그해 9월 1일 무라카미를 메이저리그로 승격시켰다. 무라카미는 1965시즌까지 5승1패 평균자책점 3.43과 100탈삼진을 남기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982년 니혼햄 파이터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일본 리그에서 통산 103승 82패 30세이브 평균자책점 3.64의 성적을 남겼다. 메이저리그 기록이 많지 않아서 비교의 의미가 크지 않지만 평균자책점만 떼어 놓고 보면 1960년대에도 메이저리그와 일본 리그의 수준은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자이언츠 구단은 무라카미를 계속 데리고 있고 싶었지만 난카이 구단의 반대로 일본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미국과 일본 구단 사이의 선수 보유권 문제를 규정하기 위해 1967년 미국과 일본의 첫 번째 '선수 계약 협정'이 체결됐다. 1998년 제정된 ‘포스팅 시스템’의 모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일본은 오랜 기간 미국과 교류하는 한편 국제 대회의 우수한 성적 등에 힘입어 자국 선수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한국도 이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김광현의 사례를 보면서 글쓴이는 재수(再修)라는 낱말을 떠올렸다. 글쓴이는 고등학교 진학 과정에서 재수한 경험이 있다. 1년이란 시간이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지만 글쓴이에게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김광현은 내년 11월 1일 이후 다시 포스팅에 도전할 수 있다. 돌발적인 일만 일어나지 않으면 2016년 시즌이 끝난 뒤에는 완전한 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메이저리그에 갈 수도 있다.

김광현에 앞서 메이저리그 진출이 불발된 양현종[사진=김현민 기자]

대체로 포스팅 시스템의 성공 사례만 보도되고 있지만 일본인 선수들 가운데에도 낙방, 재수 등 실패 사례가 꽤 있다. 오츠카 아키노리(투수)는 2002년 첫 도전에서 어느 구단으로부터도 입찰을 받지 못했다. 원 소속 구단인 주니치 드래건스와 1년 연장 계약을 한 뒤 재도전해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으며 미국행의 꿈을 이뤘다. 미쓰이 고지(투수·전 세이부 라이온즈)는 2008년과 2009년 두 차례 연속 낙방했다. 이와쿠마 히사시(투수)는 라쿠텐 골든 이글스 시절인 2010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1910만 달러에 낙찰했으나 입단 협상이 불발됐다. 이와쿠마는 이후 2012년 시즌 자유계약선수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고 올해까지 3시즌 동안 38승 20패 평균자책점 3.07의 좋은 성적을 올렸다. 15승 9패 평균자책점 3.52를 기록한 올 시즌에는 올스타로 뽑히는가 하면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상’ 경쟁에서 3위를 기록했다. 이와쿠마는 시애틀에 입단할 때 선발과 투구 이닝, 수상 등에 따른 340만 달러의 인센티브가 있긴 했지만 150만 달러의 썩 좋지 않은 계약을 했다. 그런데 9승 5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3.16을 기록한 첫 시즌이 끝난 뒤, 2015년까지 연장 계약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된 2년간 1400만 달러의 계약에 합의했다. 재수생의 성공 사례로 김광현이 참고할 만하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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