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알바시네]35.'솔트' 안젤리나 졸리의 탈주

체제와 이념은 인간을 완전히 가둬놓을 수 있는가

1980년대 전두환 시절의 교교한 정적이 깔린 여름, ‘TIME誌’에는 냉장고 문을 열 때처럼 시원한 무엇이 있었다. 매끈거리는 지면에 깔린 영어 활자(活字)들은, 그야 말로 활어처럼 살아있는 글자였다. 그때 만난 낱말들 중에 SALT라는 말도 있었다. 소금이란 말을 저렇게 대문자로 썼을 때, 갑자기 생겨나는 진지한 긴장감. 솔트의 기억은 내게는 그렇게 남아있다. 미국놈들과 소련놈들이 서로 이마에 총을 겨눈 영화장면처럼, 핵미사일을 겨누는 상황에서, 그리고 호주머니에 다른 손으로 뽑고 있는 또다른 총까지 비슷한 전력(戰力)으로 대치하면서, 양쪽은 이럴 거 뭐 있느냐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기 시작한다. 서로의 살기(殺氣)를 조금씩 누그러뜨릴 수 있는, 무기 감축을 협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라는 이름의 이 협상은, 누군가의 기지(機智)로 ‘SALT'로 불렸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오. 마태복음 5장13절을 기억했으리라.

안젤리나 졸리는 성경의 소금과 미소(美蘇)의 소금을 모두 머금었다. 하지만 어느 소금도 삼키지 못하고 양치질만하다 뱉고 말았다. 그 소금의 이야기이다. 암호명 ‘솔트’인 이 여인은 미국 CIA에서 활약하는 뛰어난 스파이였다. 어느 날, 러시아의 한 거물급 인사가 그녀의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만 그랬다. 에블린 솔트.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위조’되어 철저히 스파이로 키워진 러시아의 로봇전사(戰士)였다. 진짜 로봇은 아니고, 정신적인 로봇이었다. 그러다가 북한 근처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거미학자와 교분을 쌓게 된다. 이게 문제의 씨앗이었다. 솔트는 북한 당국에 체포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는 상황이었는데, 이 여인에게서 운명의 자력을 느낀 거미학자가 적극적으로 나서 그녀를 구한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결혼까지 한다.

진짜 CIA첩자였다면, 삶의 곡절은 여기까지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러시아첩자였다는 사실이 공개되고, 갑자기 지금까지의 동지와 동료들로부터 추격을 받는 상황에 이른다. 그녀가 행해야할 최대의 미션은 러시아 대통령을 암살해서, 러시아 내에 반미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솔트는 매우 영화적으로 상쾌하고 씩씩한 활극으로 그 일을 해낸다. 그러나 이 사건은 솔트의 내면을 두 가지로 드러내고 있다. 하나는 러시아 대통령을 암살하는 대신 그에게 거미 독을 주입한 총알을 쏴서 일시 기절만 하게 한 것이다. 둘째는 자신을 추격하는 동료가 현장에 다가오자 먼저 총을 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순순히 총을 버리고 체포에 응했다. 왜 그랬을까?

이후, 솔트는 호송하던 자동차에서 또 한번 멋지게 탈출해서 러시아의 ‘첩자학교 스승’이 있는 섬으로 간다. 거기서 어린 시절 ‘스파이 무의식’과 외눈박이 국가관을 함께 주입받았던 ‘동창생’들을 여럿 만난다. 그 자리 한 복판에는 거미학자 남편이 묶여 있었고, 그녀가 도착하자 바로 처형된다. 아마도 첩자의 의식과 의지를 산만하게 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스승이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솔트는 무표정하게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듯 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후의 와인 파티에서 와인병으로 스승을 습격해 죽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스승이 만든 ‘괴물’ 동창생들을 모조리 쓸어버린다. 왜 그랬을까?

조금 더 앞에서 질문한 ‘왜 그랬을까’와 함께, 두 질문에서 생겨나는 접점이 솔트의 운명을 휘는 변곡점이 된다. 이후에 솔트는 다시 러시아측의 지령을 받고, 미군 소령으로 변장하여 미 대통령을 죽이는 임무에 참여한다. 또다른 괴물 동창생 하나가 이 일에 가담하고 있었다. 그는 미군 대령으로 꾸몄고, 솔트를 부관으로 데려고 대통령이 근무하는 건물에 들어가, 자신이 폭사(暴死)하여 소동을 일으키는 와중에 솔트를 침투시키는 미션을 맡은 사람이었다. 솔트는 결국 대통령이 핵무기 발사 명령을 내리는 최고 전략 제어 건물에 침투해, 목표물을 향해 나아가는데, 안에서도 프락치가 있었다. 바로 자신과 함께 근무하던 CIA요원이었는데, 그 또한 괴물 동창생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이 작자는 통제 상황실에 있던 사람들을 다 죽이고 대통령을 폭력으로 제압해서 뉘어놓고 있었는데, 여기에 접근한 솔트의 태도가 예상과 다르다. 그녀는 자신의 러시아 동창생을 공격해, 핵무기 발사 명령을 중단시켰고, 결국 대통령을 구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미국 보안 요원들이 들이닥쳐 자신을 체포해가는 상황에서 스턴트맨 뺨치는 활극 솜씨로 괴물 그녀석을 목졸라 죽이기까지 한다. 이쯤 해두자. 솔트는 대체 왜 이런 이상한 스파이 행위를 하고 있었을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녀는 로봇으로 자라났고 철저히 의식화되어 세상으로 보내졌다. 이념이나 체제는 인간의 사고와 판단을 철저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일까. 영화는 이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을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의 터프한 연기는 사실 로봇의 육신 안에 감춰진 인간의 ‘통제할 수 없는 섬세하고 위대한 내면’이 있음을 말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기계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이며, 세뇌된 프로그램 만으로 완벽하게 작동할 수는 없는, 자연인의 내면을 지니고 있지 않던가. 물론 이렇게만 말하면 너무나 단선적인 얘기가 된다. 나는 솔트의 내면이야 말로, 인간이 겪는 이중성과 자아분열의 ‘의미’를 드러내주는 훌륭한 영화적 장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을 한 육체 속에 함께 가지고 있는가. 가만히 짚어보라. 당신 속에 들어 있는 나쁜 당신과 좋은 당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지를. 좋은 당신이 다행히 나쁜 당신을 잘 억압하고 통제해서 훌륭하게 살아왔다면, 세상은 당신에게 좋은 평가를 내릴지 모르지만, 당신 자신은 과연 당신의 삶을 산 것이 맞을까. 나쁜 당신에게 휘둘려 공공의 적이 되어 손가락질 받다가 형장에 목이 매달리는 생이 되었을 때, 좋은 당신은 함께 죽어도 되는 것일까. 그때 우린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지지 않는가. 도대체 왜 신은 내게 한 가지 정체성과 성향과 취향을 주지 않고, 양쪽에서 서로 잡아당기는 분열적인 자아를 주었을까. 심심해서 그랬을까. 그럴 리야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그 위치와 운동의 불확정 속에서 찾아내는 자아 탐험이야 말로 인생이라는 것을 말해주려 함이 아니었을까. 솔트를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인간은 내면에서 이미 이중첩자이며 자신도 자신을 속이고 자신도 자신을 알지 못한다. 그때 위대한 인간성의 발현은, 무엇이 옳은 것이며, 무엇이 내가 해야할 일인가를 찾아내려는 의지에 들어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세상이 강요한 가치나,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옳음을 넘어서서, 내가 스스로 판단한 그 곳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가는 그 치열함이 삶의 아름다움이 아닌가 한다. 가치의 스파이들이여. 사랑의 스파이들이여. 욕망과 위선의 스파이들이여. 고독과 군중심리의 스파이들이여. 솔트 한줌 드릴테니 죽염처럼 목을 축이라.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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