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정의 현장에서] '골프여걸, 숨 좀 돌립시다'

골프에만 올인해온 젊은 한국 여자 골프선수들이 줄줄이 은퇴하고 있다. 투어에서 여유를 찾는 방법을 모색해 볼 때다.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아시아경제 손은정 기자] 줄줄이 이어지는 '골프여걸'들의 은퇴가 아쉽다. 배경은(29ㆍ볼빅)은 9일 경남 김해에서 열린 ADT캡스챔피언십에서 '고별전'을 치렀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00년 불과 15살의 나이에 프로로 전향했던 선수다. 만 서른 살이 안 됐지만 투어생활을 14년이나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KLPGA선수권 첫 승을 포함해 국내에서 3승을 거두고 2005년 미국으로 진출했다가 3년 전 국내로 유턴했다. 지난해 말 결혼한 뒤 한 시즌을 더 소화하고 골프채를 내려놓은 셈이다.이에 앞서 지난 9월에는 장정(34)과 한희원(36)이 은퇴했고, 김미현(37)과 박지은(35)은 진작 골프를 그만뒀다. 사실 20대 초반이 주축을 이루는 국내 선수들 사이에서는 20대 후반만 돼도 '노장' 소리를 듣는다. 워낙 어릴 때부터 골프를 시작해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에 벌써 15년 안팎의 무시무시한 경력을 자랑한다. 대다수는 그러나 부모의 손에 이끌려 골프채를 잡고, 선수가 된 이후에도 부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따른다. 당연히 삶의 모든 중심은 골프다. 연습과 대회 출전이 학교수업보다 중요하다. 심지어 부상보다 경기가 먼저일 때도 숱하다.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접었던 국가대표 출신의 한 유망주는 부상 때문에 재기 불능의 만신창이가 됐다. "치료할 시간이 없었다"며 "아버지는 늘 '죽더라도 골프장에서 죽어야 한다'고 주입시켰다"고 했다. 골프에만 올인한 선수들이 일찍 지치는 이유다. 로라 데이비스(잉글랜드)와 캐리 웹(호주)은 반면 배경은이 은퇴하는 날 일본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미즈노클래식에서 공동 4위를 차지했다. 데이비스는 51세, 웹은 40세다. 데이비스는 LPGA투어 통산 20승에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에서는 무려 45승을 거둔 최다승 기록 보유자다. 웹은 LPGA투어 통산 41승, 10대들이 판 친 이번 시즌에도 2승을 수확했다. 동력은 다양한 취미생활을 곁들이는 "골프를 즐기는 자세"에 있다. 데이비스는 축구 마니아다. 투어를 다닐 때도 중요한 유럽 축구 경기가 있을 때는 공식 연습도 건너뛰고 호텔방을 지킨다. 집에는 텔레비전이 5대나 있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축구 중계를 다 보기 위해서다. 웹은 농구와 낚시를 좋아한다. 한결같이 "특별한 취미가 없다"는 국내 선수들이 가여워 보이는 까닭이다. 데이비스는 4년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언제나 우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은퇴하지 않을 것"이라며 "프로선수에게는 경쟁을 즐기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는 화두를 던졌다. 배경은은 "지금까지 메모해둔 '하고 싶은 일 목록'을 하나씩 실행하고 싶다"고 했다. 데이비스의 내공을 따라가기에는 세월이 필요하겠지만 은퇴 후가 아니라 투어 안에서 여유를 찾는다면 롱런할 수 있지 않을까. 손은정 기자 ejs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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