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외교부에는 절세무공을 갖춘 숨은 고수들이 적지 않다. 예산과 기획조정을 맡은 허진 조정기획관도 '고수'중의 한 명이다.
외교부 허진 조정기획관
허 조정관은 일본어와 영어가 탁월한 직업외교관이지만 국내외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축구 전문가로 명성이 높은 공무원이다. 축구해설과 기고로 명성이 자자한 그는 현재 외교부내 축구동호회 회장이며 신문에 축구와 관련된 칼럼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그의 무공은 구수한 경상도 억양을 타고 청산유수처럼 흐르는 입담과 탁월한 글 솜씨가 바탕이 된 축구에 대한 탁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입담은 외교부 출입기자단이 브리핑한 고위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만장일치로 최고점수를 매긴데서 드러난다.외교부 예산편성안을 훤히 꿰고 윤병세 장관이 예산확보를 위해 기획재정부의 한 참 후배에게까지 직접 전화해 예산 2조 시대를 맞이했다고 열변을 토했다.그는 글도 잘 쓴다. 2006년부터 3년간 신문에 기고도 했다. 요즘도 일간지에 축구와 영화, 취미생활에 대한 글을 꼭꼭 쓴다.총에 녹이 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나 할까.허 조정관은 3일 "축구는 저에게 종교와 같다"고 축구철학을 설파했다. 초등학교부터 50을 넘긴 이 나이까지 그는 축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부친을 따라 일본 오사카에 살 때인 1979년에는 아르헨티나의 축구신동 마라도나가 출전한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를 보고 "축구를 해야 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축구선수가 되기에는 역량이 부족했지만 밤을 새워가며 축구를 공부했다. 축구 경기를 보고 팀의 포맷과 선수의 움직임 등을 손으로 일기형식을 썼다. 그리고 '외교관이 되면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축구를 볼 수 있겠구나'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대학 졸업과 동시에 외무고시에 응시해 합격했다.그는 독일(1989년~91년), 미국(1992년~94년), 예멘(1996년~98년), 네덜란드(1998~2000년)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하루에3~4경기를 시청하면서 축구전문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축구에 대한 식견을 쌓았다.특히 독일과 네덜란드에 있을 당시 독일 분데스리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이탈리아 세리에A, 영국 프리미어리그 등 세계 일류의 빅리그와 스타플레이어에 관한 해박한 상식을 축적해 '축구박사'가 됐다.특히 허 조정관은 주네덜란드 대사관 근무시절 거스 히딩크 감독과 인연을 맺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과 히딩크 감독의 미디어담당관으로 일했다. 그는 한 때 "외교장관과 히딩크 대변인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허 조정관은 "2002년 월드컵은 많은 축구전문가가 탄생하고 해외 유명 리그가 생중계되는 등 축구 인프라가 갖춰지는 분기점이 됐는데 미력하나마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제는 대한축국협회도 자립기반을 갖춘 만큼 앞으로는 유소년축구나 사회축구를 육성하는 데 힘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부산 경남고와 서울대 신문학과를 나온 그는 졸업과 동시에 외무고시 19회에 합격했다. 그러나 대학원을 다니느라 외교부 입부는 3년 정도 늦다. 대학 때는 맨발의 슬리퍼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기획조정관으로 2년 가까이 일하면서 외교부의 예산과 행정업무 체제를 마련한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내년 2월이면 다시 대사로 나갈 예정이다.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정치경제부 박희준 기자 jacklond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