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한달 전 '세부안 허점 투성이' 업계 반발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출판·유통업계가 도서정가제 시행 한달을 앞두고 문화체육관광부가 마련한 세부 시행령과 시행규칙개정 절차 등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도서정가제 개정안은 할인과 적립을 신·구간 구분 없이 15%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 등을 담고 있다.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 중재로 출판사 및 유통 관계자, 소비자단체 대표 등이 모여 도서정가 관련 책 할인 폭을 최대 15%를 전격 합의하면서 도서정가제 개정이 급물살을 탔다. 이후 최재천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 법률안이 지난 4월 국회 본 회의 통과, 5월 공포 등을 거쳐 오는 11월2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체부는 지난 7월 관련법을 입법예고하고, 업계에 의견 제출을 요청했다. 관련업계는 같은 달 공동의견을 마련, 문체부에 제출했으나 지난달 문체부가 업계 의견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을 통보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관련업계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엔 도서정가제를 무력화시킬 위험 요소가 그대로 방치돼 있다"며 "문체부는 현장의 의견을 도외시하고 과거의 방식만 답습하려고 한다"고 반발했다. 또한 "일부 업체의 변칙적 영업을 방지하기 위해서 조속히 '정부·출판·서점계 협력회의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 각종 기존 모호 = 개정안 중 주요 쟁점은 ▲ 간행물 판매자에 대한 규정 ▲ 경품류, 배송료, 카드·통신사 제휴를 통한 할인 등 간접할인 포함 여부 ▲ 전집(세트)도서 구성, 판매 기준 마련 ▲ 도서정가제 위반에 따른 과태료 상향 ▲ 중고도서, 리퍼도서(일부 파손된 도서), 폐업 출판사 도서 재정가 등 세부사항, 외국 간행물 등에 대한 기준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와 관련, 출판·유통업계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에 '오픈마켓' 등 판매중개업자의 명문화, 중고도서의 정의, 세트도서의 개념과 기준, 외국 간행물에 대한 명확한 규정 등을 반영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조재은 양철북 대표는 "문체부가 오는 11월 도서정가제 시행을 일방적으로 진행, 도서정가제 취지를 무력화시키고 있다"며 "현재의 위험 요소를 방치한 개정안으로는 출판시장을 더욱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판매중개업자(오픈마켓)에 대한 규정이 분명치 않아 혼선이 예상된다는 주장이다. 판매중개업자가 판매자와 별도로 추가 할인 등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출판과 유통의 모든 참여자가 동일한 기준이 적용돼야 하는데도 판매중개업자는 특혜를 받을 소지가 있다. 이에 김민기 교보문고 마케팅 지원실장은 "도서정가제 시행전에 모든 시장참여자가 동일한 기준을 적용받을 수 있게 관련 규정을 세밀하고 명확하게 재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문체부, 미온적 태도로 개정안 실효성 의문 = 경품류, 배송료, 카드·통신사 제휴를 통한 할인 등 간접 할인 규제가 없는 것과 관련, 문체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도서정가제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2011년 전자책에도 도서정가제를 적용하는 '디지털서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데 이어 올해 '반 아마존법'을 제정, 온라인서점의 무료 배송을 차단하고 있다. 반면 일반서점은 무료 배송이 허용돼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다. 따라서 출판업계는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될 경우 온라인서점이 마케팅 수단을 빌미로 변칙 할인할 수 있게 됐다. 출판업계는 "온라인서점이 변칙 할인에 따른 제원을 제 3의 사업자(출판사, 카드사)에 전가, 결국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전집(세트) 도서 구성, 판매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정 법률안에는 세트도서와 세트 내 개별도서에 대한 가격과 발행일에 대한 기준이 없어 향후 혼선과 차질이 예상된다. 특히 세트 내 개별도서의 가격과 세트도서 자체의 가격이 상이할 경우 편법적 할인이 가능해져 도서정가제 법망을 교묘히 피해 할인 수법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과태료도 문제다. 사재기 위반 등에 대해서는 과태료가 2년 이하의 징역과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수위를 높였다. 그러나 도서정가제 위반의 경우 개정안에서도 기존 과태료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출판업계는 "사재기 처벌 수준에 상응하게 도서정가제 처벌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온라인업계에서는 '리퍼 도서', 출판 행사 할인 판매에 대한 규제도 손봐야할 대목으로 꼽는다. ◇ 도서정가제 완전 실현 '요원' = "우리 정부는 책을 다른 일반적인 상품과 동일하게 간주하는 것을 거부하고 시장의 메커니즘을 수정, 당장의 이익을 가려서는 안 될 책의 문화적 특성을 보장하고자 한다. 도서정가제는 첫째 전국적으로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가격으로 도서를 판매하여 국민의 독서 평등권을 확보할 것이며 둘째 유통체계에 있어 집중화를 방지하고, 셋째 특히 어려운 작품들을 창작 출판할 수 있는 출판 다양성을 보장한다."이는 자크 랑 프랑스 문화부장관이 한 말이다. 1981년 자크 랑은 '랑 법'(문화부 장관인 자크 랑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도서정가제법)을 도입, 오늘 세계 도서정가제의 모델을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도서정가제를 '출판산업 진흥'이라는 측면보다는 규제적 관점에서 경쟁을 저해하는 시장논리로 접근해 왔다. 이에 2007년 실용도서와 초등학교 참고서 등을 제외하는 내용의 '도서 할인에 관한 법'을 개정, 실시했으나 골목 서점이 무너지고, 출판산업이 붕괴되는 등 시장 혼란이 가중된 상황이다. 한편 최근 도서정가제 시행을 앞두고 온라인 서점의 과당할인경쟁도 점입가경이다. 일부 출판사들도 가세해 '재고서적 땡처리'에 나서며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최근 일부 온라인서점에서는 90% 할인, '선착순 100원' 이벤트 실시 등 등 유통 질서가 문란한 상황이다. 이에 출판업계는 "도서정가제가 안정적으로 정착, 출판 생태계를 복원시키려면 정부가 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출판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조속히 변칙적인 영업이 불가능하게 법을 개정하고 정책 보완을 위한 사회적 협약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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