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광화문 지키는 사람들 '유민아빠, 우리가 있잖아요'

30도 땡볕에도 '특별법' 위해 자리 지키는 시민만 200여명

▲23일로 고(故) 유민군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단식 농성에 돌입한 지 41일째로 접어든 가운데, 농성장에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꽃들이 단장돼 있다.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박준용 기자] # 사람이 곡기를 끊으면 어떻게 될까. 의학계에 따르면 단식에 돌입한 초기에는 몸에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체지방 분해가 시작된다. 이어 20일이 지나면 근육과 장기의 세포가 파괴된다. 의사 최규진 씨는 "단식을 하면 체중이 줄면서 몸의 단백질이 빠진다. 그러면서 신진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특별한 체질이 아닌 보통 사람이라면 단식 후 50일에서 70일을 넘기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본격적으로 인간이 '단식'을 항의 수단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저물어 가던 대영제국 시기였다. 당시 여권운동가 에멜린 팽크허스트는 여성 참정권을 위해 단식농성을 선택했다. 이후 마하트마 간디는 일생동안 18번이나 단식했고, 독립운동가 바가트 싱도 116일이나 단식을 이어갔다. 국내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3년 5월18일부터 민주화를 위해 23일간 단식했고, 지난 2008년에는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단식 94일을 버티다 병원으로 후송됐다.23일로 세월호 희생자 고(故) 유민 군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한 지 41일째가 됐다.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간 가운데, 김씨의 건강상태가 악화되면서 동조단식·응원을 위해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찾은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종교계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 편에 서는 것은 종교인의 의무"

▲23일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단식에 함께하고 있는 시민들.

이날 찾은 광화문 농성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채 머무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도 희생자들의 명복과 유가족들의 안정을 위해 함께하는 종교인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임용환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신부는 "종교인이라면 가난하고 고통 받는 자의 편에 서는 것은 의무다. 유가족이 단식하는 것을 함께해 힘을 모으려고 왔다. 또 특별법 관련해서도 뜻을 함께 모으고 싶다. 단식을 함께한다는 것은 연대의 힘이 있다. 전달되는 파급효과가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농성장에는 종파를 초월한 종교계의 염원도 섞여 있었다. 임태환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는 "자주 나오지 않아 부끄러웠는데, 종교인들끼리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단식에 참여하는 모습이 좋아서 오게 됐다"며 "어려운 문제에서는 종교계에서 목청을 높이기보다 이런 일에 대응하는 힘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나로 모으는 일이 중요한 만큼, 농성장의 동조 단식장에 종교인들이 종파를 초월해 모여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연극·영화인 "큰 피해를 입은 유족들을 정치적으로 몰아가려는 상황 안타깝다"

▲연극인·영화인 등 예술계 인사들이 23일 오후 광화문 세월호 단식농성장에 모여있다.

농성장에는 종교인·시민사회단체 회원 외에도 다양한 시민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유민이 아버지의 단식이 길어지며 연극인, 영화인, 만화인 등 문화계 인사들도 대거 단식농성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이날 만난 연극인 박상현(54)씨는 "세월호 유족은 큰 피해를 입은 국민인데도 이들을 감싸려 하지않고 하나의 정치적 집단으로 몰아가려는 상황이 안타까워 나오게 됐다"며 "유족과 정부, 여당 사이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말은 그래서 어폐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씨는 "단식에 대해 단식 '투쟁' 이라는 용어도 많이 나오는데 이도 수정이 필요한 것 같다. 투쟁한다는 것은 결국에는 개별적 정치적인 집단으로 오인하기 쉽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배우 겸 작가 고원(35·여)씨도 농성장 한 켠을 지키고 있었다. 고씨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언젠가는 와야지 생각하고 있었다"며 "유민이 아버지가 병원 가셨을 때 오게 돼 시기가 아쉽긴 하지만, 같이 힘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고씨는 또 "유가족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이 합의가 안 돼 아쉽고, 이 문제가 잊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단식 농성장에 나왔다"고 밝혔다.◆청소년들 "누군가는 포기하더라도, 다른 누군가는 더 큰 목소리 내야"

▲23일 광화문 농성장을 찾은 송승인·조혜령(15·여) 학생과 친구들.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는 휴일을 맞아 이곳을 찾은 중·고등학생들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학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단식에 참여할 수 는 없었지만, 소중한 주말 시간을 내 유가족들을 응원하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이날 오후 3시께 광화문 대로변을 향해 피켓을 들고 있는 송승인·조혜령(15·여) 등 경기도 양주시 서정중학교 학생 4명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광화문 광장 인근 곳곳에 서서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송 양은 "생각보다 정치인 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반응이 없어서 화가 났어요"라며 "학생이기는 하지만 저희도 이 나라에 살고 있는 한 국민인 만큼 (유가족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서 나왔어요"라고 밝혔다. 옆에 선 조 양도 "아무것도 모른 채 떠나간 언니·오빠들이 왜 죽었고 왜 구해지지 못했는지, 또 왜 배는 침몰했는지 밝혀져야 해요"라고 말했다.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찾아 문재인 의원에게 호소한 오병주(17) 학생.

같은 시각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머무르고 있는 천막 앞에서는 서울 강서구 화곡고등학교 1학년 오병주(17) 학생을 만났다. 오 군은 천막 안에 있는 문 의원에게 직접 손으로 쓴 피켓을 보여주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의견이 반영된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오 군은 "평소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주입식 교육을 받으면서 '내가 우리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하고 고민 했어요"라며 "그러다 어제 유민이 아버님이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농성장을 찾았죠"라고 말했다.아직 어린 학생인 만큼 어려운 점도 적진 않았다. 오군은 "집에서도 반대하시고,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이익을 걱정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죠"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이곳을 찾은 이유에 대해 오 군은 "문을 열어주지 않는 정치에 힘이 빠져 누군가는 확성기를 내려놓더라도, 다른 누군가는 이어 받아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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