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식은 끝나도 섹스는 끝나지 않았다
[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 A씨는 "에이, 가족끼리 어떻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남자들은 나이가 먹어가면서 "한다"와 "안한다"로 갈린다. 부부관계 얘기다. 주변에 보면 섹스리스 부부가 많아진다. "안한다"는 다시 두부류로 갈린다. "진짜 안한다"와 "안된다"다. A씨는 부부관계에서 섹스는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부부관계는 순간의 쾌락을 넘어서는 뭔가, 지고지순한 동지적 관계라고 열변을 토한다. "함께 자고 싶은(섹스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함께 잠들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 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깐다. 아내는 그런 여자라나. 양기가 입으로 올라온 게 확실하다. 그래도 멋져 보인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쓴 문장을 섹스리스를 합리화하는데 사용한다. B씨는 "한다"파의 지존이다. B씨는 이런 얘기 귀담아 듣지도 않고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을 뿐이다. B씨는 휴가 때 '놀자당' 친구들과 설악산에 1박2일 여행을 갔다. 골프, 술, 카드라는 잡기 3종경기를 치르기 위해서다. 그는 주말부부였다. 아내가 속초에 파견 나와 있었다. 하루 일찍 속초에 간 그는 설악산 등반을 마치고 부부의 정을 나눈 뒤 골프장에 합류했다. 골프장에서 친구들을 혼내주면서 자기는 철인5종을 했다고 설레발을 쳤다. 그래서 철인5종이다. B씨는 이런 무용담 덕분에 철인5종이란 별명도 얻었다. A씨가 "진짜 안한다"가 아니라 "잘 안된다"라는 사실을 둘의 대화에서 알게 됐다. A씨와 B씨는 둘 다 탈모 치료를 위해 전립선 치료제 프로스카를 복용하고 있다. 전립선 치료제인 이 약을 먹으면 머리털이 나기 때문이다. 대신 발기부전이나 성욕 감퇴 등의 성기능 장애를 유발하기도 한다. A에게 잠시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탈모 치료약으로 나온 같은 성분의 프로페시아를 먹으면 되는데 비싸다. 프로스카는 잘라 먹어야 하는데 여자에게는 닿기만 해도 위험하다." 그들의 대화는 싸니까 조심해서 프로스카를 먹으면 된다, 성기능장애는 일시적이니 머리털이 났으면 잠깐 쉬었다 다시 먹어라는 내용으로 압축된다. 나와는 관계 없는 얘기지만 돈(절약), 외모(머리털), 건강(부작용), 섹스(발기부전)라는 중년 남성의 원초적인 관심사가 알약 하나에 압축돼 있다는 생각에 귀담아 들었다. 성에 대한 중년 남성의 갈망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영국의 생식생물학자 데이비드 베인브리지는 그의 저서 '중년의 발견' 속 '생식은 끝나도 섹스는 끝나지 않는다'라는 장에서 "성이 아기 만드는 기능을 잃게 되면 남는 것은 인간성뿐이다"라고 주장한다. 생식에서 시작한 섹스가 생식기능이 없어져도 계속되는 게 인간의 본성이란 얘기다. 동물의 왕국을 예로 들면 쉽다. 표범은 2주간 암수가 교미를 하고 헤어진다. 암표범은 2년간 새끼를 배고, 낳고, 양육하고, 독립시킨다. 그 뒤에 발정기를 맞아야 수컷을 찾는다. 인간만 생식과 관계없이 주구장창 붙어있고 생식은 끝나도 섹스를 끝내지 않는다.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덤벼드는 남편에게 "이놈의 짐승"하면 안된다. "이놈의 인간"이 맞는 표현이다. 생물학자들은 인간 숫컷이, 인간 암컷을 떠나지 않고 주변에 맴도는 이유를 숫컷이 아닌 암컷의 진화에서 찾는다. 모든 짐승의 암컷들은 발정기를 숫컷에게 드러내놓고 알린다. 반면 여성들만이 발정기를 숨기도록 진화했다. 암컷의 발정기를 모르는 수컷은 인간이 유일한 셈이다. 발정기를 숨겨 자손을 원하는 숫컷을 붙잡아 놓고 계속 교미하고, 먹을 것을 가져오고 보살피도록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동물들은 다 대놓고 야합(野合)을 하는데 인간만 야합을 욕하는 이유도 숨기도록 고안된 본능 때문이다. 인간이 이성을 밝히는 이유가 밝혀졌다. 생식은 끝나도 섹스는 지속되는 이유는 너무도 인간적이다. 이렇게 만든 원흉이 여성의 진화인 셈이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밝힘증에 막대한 책임이 있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남성을 길들이기 위해 진화한 데 이어 피임을 통해 기능으로서의 생식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A씨는 약을 끊은 뒤 연애세포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아내가 가족이 아닌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다. 심장병약의 부작용으로 발견된 비아그라를 찾기 시작한다. 인간적으로 변했다.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없는 사랑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도종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사랑은 거품이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면 비너스는 거품위에 서있다. 그리스신화에서 비너스는 아프로디테다. 아프로디테의 뜻이 거품이다. 비너스는 거품에서 탄생했다. 아름다움도 사랑도 다 거품이다.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순간의 화사함보다 신뢰감, 순간의 열정보다 따뜻함에 기울게 된다. 그렇다고, 시 한 수 읊은 뒤 손만 잡고 잘 일은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내를 다시 애인으로 만들고 싶다.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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