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충격의 화란 축구, 1974년 돌풍 재현?

아르옌 로벤[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네덜란드가 또다시 축구 팬들을 놀라게 했다. ‘또 다시’라는 부사를 쓴 까닭은 그동안 몇 차례 축구 팬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네덜란드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B조 세 경기에서 전승을 거뒀다. 특히 14일에는 지난 대회 챔피언이자 이번 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스페인을 5-1로 완파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네덜란드의 5-1 완승은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큰 이변 가운데 하나”라고 얘기한 내용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전 세계 많은 축구 팬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글쓴이가 네덜란드 축구를 희미하게나마 알게 된 건 1970년대 초반의 일이다. 스포츠 전문 매체라고는 1961년과 1969년에 각각 창간한 ‘월간 스포츠’와 ‘일간스포츠’ 그리고 축구 전문 매체로 1970년 발간하기 시작한 ‘월간 축구(오늘날 베스트일레븐)’ 등이 있던 때다. 주한미군방송인 AFKN이나 미국 스포츠 잡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그 무렵 스포츠팬들이 세계 스포츠의 동향을 알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통로였다. 1974년 서독 월드컵을 앞두고 ‘월간 축구’에서 본 기사 가운데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제목이 있다. ‘요한 크루이프는 21세기형 선수’다. 어지간한 팬이면 알고 있는 네덜란드 축구 선수 요한 크루이프, 바로 그 크루이프다. 뉴밀레니엄이 열린다면서 전 세계가 시끌벅적했던 1990년대 후반이 20년 이상 남아 있을 때 ‘21세기’라는 용어는 무척이나 낯설었다. 그런데 크루이프 앞에 그 말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열린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특히 서독과 네덜란드의 결승전에서 글쓴이는 TV 화면이긴 했지만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된다. 주장인 크루이프와 선제골의 주인공인 요한 니스켄스를 비롯한 네덜란드 필드 플레이어 10명은 30m 정도의 폭을 유지하면서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며 공격과 수비를 이어갔다. ‘토털 사커’를 본 것이다. 이 무렵 세계 축구계는 1958년 스웨덴 대회와 1962년 칠레 대회에 이어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 통산 세 번째 우승하며 줄리메컵을 영구적으로 소유하게 된(브라질축구협회가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도난당했고 모조품을 보관하고 있다) 브라질이 전파한 4-2-4 포메이션이 풍미하고 있었다. 전통의 WM 포메이션에서 진일보한 전형으로 공격수와 수비수의 간격이 좁혀지긴 했지만 네덜란드만큼 밀집 대형을 이뤄 공수를 펼치는 나라는 없었다. 게다가 오랜 기간 WM 전형에 익숙해 있던 글쓴이를 비롯한 국내 팬들에게 네덜란드 축구는 경이로웠다. WM 포메이션은 요즘 같은 숫자 방식으로 하면 2-3-2-3 정도로 볼 수 있다. 레프트 풀백·라이트 풀백-레프트 하프·센터 하프·라이트 하프-레프트 인사이드·라이트 인사이드-레프트 윙·센터 포워드·라이트윙 등의 포지션에 10명의 선수가 전후방으로 길게 늘어서는 형태다. 그런데 네덜란드는 이런 포지션 개념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한데 뭉쳐서 서독 진영과 자기 진영을 오가더니 경기 시작 2분 만에 서독 진영을 드리블로 돌파한 요한 크루이프가 페널티킥을 얻었다. 1-0, 네덜란드 리드.네덜란드는 1934년 이탈리아 대회와 1938년 프랑스 대회에서는 1라운드에서 탈락했고 1950년 브라질 대회와 1954년 스위스 대회에는 아예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 1958년 스웨덴 대회부터 1970년 멕시코 대회까지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위스, 불가리아 등에 밀려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1966년 잉글랜드 대회와 1970년 멕시코 대회 예선에서는 북아일랜드와 폴란드에 밀려 조 3위가 되는 등 1970년대 이전까지 유럽 중, 하위권 수준이었다. 월드컵보다 30년 뒤에 출범한 유럽선수권대회에서도 네덜란드는 부진했다. 1976년 유고슬라비아 대회에서 3위를 하기 전까지 참가 신청을 하지 않은 1960년 제1회 대회(프랑스)를 제외하고 모든 대회에서 예선 탈락했다. 그런 네덜란드가 크루이프라는 축구 천재를 앞세워 월드컵 우승 문턱에 한쪽 발을 올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때 이미 한 차례(1954년 스위스 대회) 월드컵 우승 경력이 있는 서독은 저력이 있었다. 전반 25분 파울 브라이트너가 페널티킥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전반 43분 게르트 뮐러가 멋진 터닝슛으로 2-1로 역전하며 두 번째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4년 뒤인 1978년 대회 결승에서 네덜란드가 개최국 아르헨티나와 연장 접전을 벌인 끝에 1-3으로 지는 장면도 글쓴이를 비롯한 중, 장년 팬들은 생생히 기억한다. 마리오 켐페스의 결승 골과 비처럼 쏟아지는 종이 응원 도구들도. 1970년대에 세계를 놀라게 한 네덜란드 축구를 흑백 TV였지만 안방에서 볼 수 있었던 건 1970년 완공한 금산위성통신지구국 덕분이었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스포츠레저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