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정기자
[아시아경제 손은정 기자] "10살, 4월9일이었어요."
'상금퀸' 장하나(22ㆍ비씨카드)는 기억력이 남다르다. 골프채를 처음 잡은 날을 날짜까지 정확히 이야기했다. 실전에서 코스는 물론 상황에 대한 복기를 가미해 철저하게 두뇌게임을 펼치는 동력이다. 2012년 KB금융스타챔피언십을 제패하면서 챔프군단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는 다승왕과 상금퀸, 대상 등 3관왕에 등극해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선수다. '똑똑한 장하나'를 지난달 29일 경기도 이천 휘닉스스프링스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 '타고난 DNA'= 지난주에는 월요일부터 사흘간 각종 프로암 경기를 치렀고, 곧바로 E1채리티오픈 연습 경기와 대회가 주말까지 이어졌다. 5월인데도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시점이었다. 지친 기색이 없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일단 잘 먹어서 에너지를 보충하는 스타일이다. 육회는 앉은 자리에서 두 접시를 먹는다. 서울 반포의 유명한 고깃집 딸답다.
"끈질긴 승부 근성은 타고난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 장창호(63)씨는 스케이트, 어머니 김연숙(63)씨는 농구선수 출신이다. 장하나는 "아버지는 대상 포진에 걸리고도 새벽 4시에 스키를 타러 가셨고, 깁스를 한 팔 위에 장갑을 덧낀 채 스키를 타는 운동광"이라며 "골프만 빼고 모든 종목에서 (아버지에게) 진다"고 했다. 장하나 역시 어릴 때부터 검도와 등산, 수영, 승마까지 온갖 스포츠를 섭렵했다.
골프는 특히 레슨프로가 인정할 정도로 손목 힘이 좋았다. "2년이 지나면서 아버지와의 내기에서 이기기 시작했다"는 자랑을 곁들였다. 실제 6학년 때 이미 한국여자오픈에 초청돼 40위에 올라 가능성을 과시했다. 그해 방한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와 만나는 행운과 함께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는 아이"라는 극찬까지 받았다. "우상을 만난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 '넘버 1' 장하나= 프로생활도 순탄하다. 2011년 KLPGA투어에 데뷔해 2012년 가을 첫 우승을 신고했고, 지난해 3승을 수확했다. 올 시즌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014시즌에 포함되는 현대차 중국여자오픈에서 일찌감치 1승을 챙겼고, 상금랭킹 2위(2억1985만원)를 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평균타수 1위(70.13타)의 경기력이 돋보인다. 연초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초청 선수로 여러 차례 나서면서 승수를 추가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세인트나인 준우승을 비롯해 우리투자증권 5위, E1채리티 3위 등 매 대회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의견충돌이 많았던 외국인 캐디와 헤어진 뒤 E1채리티부터 베테랑 장지현(39)씨와 호흡을 맞추면서 일관성도 높아지고 있다.
▲ '긍정의 힘'= 시즌이 시작되면 선수들에게는 오히려 연습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도 장하나가 절대 빠뜨리지 않는 게 필라테스다. 코어와 밸런스 위주의 운동을 한다. 일주일에 두 차례, 1시간 반씩이다. 흐트러지지 않는 스윙을 위한 비법이다. 긍정적인 성격도 큰 도움이 된다. "보기를 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는 성격"이라며 "만회할 홀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투어를 즐기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매 대회 골프공을 한 박스씩 따로 준비한다. 사인을 하고, 만화 캐릭터를 그려서 갤러리에게 나눠 주는 재미다. 그림 그리는 재주가 특출 나다. "경기가 재미있어야 투어도 인기를 끈다"는 확고한 신념이 토대가 됐다. 22살의 장하나가 결코 어려 보이지 않는 이유다.
올해 목표는 4승이다. 해외 무대 경험도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상금랭킹 1위 자격으로 나갔기 때문에 욕심이 났다"는 장하나는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현실을 깨닫는 소중한 경험이었다"라며 "우선 올림픽에서 꼭 태극마크를 달겠다"는 포부를 소개했다. "우승하고 다시 만나겠습니다"라며 돌아서는 장하나의 뒷모습이 듬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