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자국 기업의 투자는 한계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은 물론 중국,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들도 외국인 투자 유치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선진 기술 이전, 외화 획득, 고용 확대 등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발표한 'FDI가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가속화할 것인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동아시아 역내 그린필드형 외국인직접투자 유입으로 183만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발생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성과가 '그린필드형 투자'였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린필드형 투자란 외국 자본이 투자 대상국의 용지를 직접 매입해 공장이나 사업장을 새로 짓는 방식의 투자를 뜻한다. 박근혜정부가 추구하는 '상생경영'의 기치와도 일맥상통한다. 반면 시장 진출만을 목적으로 하는 투기형 외국 자본의 투자는 오히려 국내 산업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최근 현대엘리베이터의 제조·설치·서비스 협력사 250여곳은 '쉰들러는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호소문을 공동 명의로 발표한 바 있다. 골자는 이렇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 유일의 토종 승강기 제조사로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개발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고 7년 연속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켜왔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해운 경기 악화로 인해 현대그룹 전체가 재무적인 어려움에 처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현대그룹은 고강도 자구 계획을 발표했고, 이에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2대 주주인 쉰들러 홀딩 AG(이하 '쉰들러')는 유상증자를 반대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자금 압박을 통해 승강기 사업부를 인수하겠다는 검은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쉰들러가 한국에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할 정도로 방치하고 있는 점, 10년 넘게 현대엘리베이터가 경영권 분쟁이나 재무적인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자금 지원을 조건으로 승강기 사업부 매각을 종용한 점 등을 들었다. 실제로 쉰들러는 2006년 현대엘리베이터가 KCC와 경영권 분쟁을 겪을 당시 KCC로부터 25.5%의 지분을 매입하는 등 현재까지 총 30.9%의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쉰들러를 그린필드형 투자자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승강기 부문 전 세계 2위인 이 회사는 국내 승강기 시장 진출을 위해 2003년 중앙엘리베이터를 인수했지만, 불과 3년여 만인 2006년 공장을 철수하고 물류창고로 전환했다. 고용 창출, 선진 기술 이전을 통한 '상생경영'과 반대되는 처사다. 반면 현대엘리베이터는 1984년 창사 이래 단 한 건의 고용조정도 없이 25년간 무분규 사업장을 유지해 올해 노사문화대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승강기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시장이 확대되는 만큼 에너지 산업과 마찬가지로 국가 기간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분야다. 마지막 토종 업체마저 무너진다면 국내 승강기 시장은 외국 기업의 판매처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린필드형 투자는 얼마든지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투기형 투자에 대해서는 국내 기업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권오영 동양미래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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