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사회문화부장
재작년 대선을 전후한 시기로부터 1년여간은 우리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한 지도자의 극적인 변신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그것은 '대통령 후보' 박근혜, 그리고 '대통령' 박근혜의 변신이었다. 대통령 후보로서의 그가 보여준 전향적 변신은 사뭇 놀라운 것이었고, 그 변신으로써 그는 마침내 대통령 당선의 숙원을 이뤄냈다. 그것은 보수 정당으로 수세에 몰려야 했을 진보적 의제들에서 오히려 공세를 취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승리였다. 전향적 변신이 가져온 역설과 역공의 개가(凱歌)였다. 그러나 그의 변신이 진짜 놀라웠던 것은 오히려 그 후에 펼쳐졌다. 취임 후 지난 1년간 그가 보여준 면모들, 그건 전혀 다른 박근혜를 보는 것이었으니 많은 이들에게 더할 수 없는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줬다. 다만 그것이 그 자신과 국민들에게 불행했던 것은 첫 번째 변신이 적잖은 이들에게 신선함과 기대를 낳았던 것이었다면 두 번째 변신은 실망과 낙담을 일으키는 것이었으니, 이것은 이른바 진보이건, 이른바 보수이건,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이들은 물론 그를 지지했던 이들에게서조차 다를 게 없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과거로의 역행이냐 미래로의 전진이냐 갈림길에 있다. 지상의 진흙탕 같은 현실 바깥 천상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그 혼돈과 갈등의 아수라장에서 크게(大) 가닥을 잡아주고(統) 다스림(領)으로써 오히려 더욱 높아질 것인가 그 기로에 서 있다. 첫 번째 변신과 두 번째 변신 중 어느 것이 그의 진면목인지를 보여줘야 하는 국면에 처해 있다. 올해는 갑오동학농민전쟁과 갑오경장 2갑자의 해이기도 하지만 현대사의 한 고비가 된 해로부터 40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1974년 봄 유신정권은 긴급조치로써 만물이 피어나는 화사한 봄을 더욱 얼어붙은 '겨울공화국'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것은 이미 빈사상태에 빠진 민주주의에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타격이었다. 그것은 이를 테면 국민이 정부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선출하겠다(브레히트)'는 기괴한 한국적 민주주의의 전도였다. 설마 박근혜 대통령이 꿈꾸는 나라, 그가 가려고 하는 '선진 한국', 그가 자신의 충성스러운 신하들과 함께 그리고 있는 미래는 '아버지의 나라'의 영광인가. 결코 아닐 것이다. 절대로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해 필자는 생전 처음으로 청와대에 가 봤다. 내가 무엇보다 놀란 것은 생각 이상으로 방대한 그 넓이였다. 흔히 우리는 청와대에 대해 대통령의 관저가 시민들의 삶의 공간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비판한다. 그러나 내겐 그 같은 지리적 거리는 한편 세간의 일에 휩쓸리지 않고 담담히 통찰하게 해 주는 것으로 보였다. 그보다 내가 삼엄한 경비 속에 청와대 경내를 걸으면서 든 생각은 그 안에 '주인'으로 사는 사람이, 자신의 '가옥'을 위해 아마 수백억의 세금을 기꺼이 제공하는 국민들이 바라는 대로 그 주인이 그 넓이에 맞는 안목을 보여주길 진심으로 바란 것이었다. 백암 박은식 선생은 흥선대원군에 대해 "혁명가의 기백을 갖췄으나 그에 맞는 식견을 닦지 못해 국망으로의 길을 재촉했다"고 통탄했다. 청와대의 수십만평 넓이에 맞는 안목, 경내의 낙락장송이 드리운 그늘처럼 널리 아우르는 품, 그것이야말로 그 넓은 집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길일 것이다. 지금의 대통령 선거 불복 논란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은 야당의 승복, 시위대의 철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넓은 관저의 주인다운 안목과 시야를 갖출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라는 '3번째 변신'이다. 다음 주 신년 기자회견이 그 3번째 변신의 첫 출발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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